산업

고립되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 "모두가 외롭다"

[머니S리포트-인류의 가장 슬픈 질환②] 환자 1인당 연평균 관리비용 2113만원

최영찬 기자VIEW 27,1532023.01.09 06:40

글자크기

67세의 딸은 87세의 아버지를 14년 간 부양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딸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딸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는 것. 다행히 딸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십수 년을 부양한 딸을 알아보지 못한 '치매 환자'였다. 고령층 치매 환자가 국가적 난제로 떠올랐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관리비용은 2018년 1조달러(1275조원·4일 기준 원/달러 환율)에서 2030년 2조달러(2550조원)로 2배 상승할 전망이다. 한국 역시 2025년이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 고령층인 초고령 사회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50년 국내 치매 추정 환자가 300만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치매 환자 관리에 대한 현주소를 짚어봤다.
사회적 편견 속에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예방과 지원의 최전선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회적 편견 속에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예방과 지원의 최전선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AD
▶기사 게재 순서

①2050년엔 300만명… 가족도 나 자신도 모든 게 사라졌다

②고립되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 "모두가 외롭다"

③"환자도 가족도 행복해야죠"… 주요국 치매 지원은 어떻게

#. 2022년 크리스마스이던 12월25일, 전남 고흥에서 81세의 할머니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치매 의심 증상이 있는 할머니는 실종 당일 오후 2시30분쯤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홀로 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소방 인력 170여명과 드론·헬기 등 장비 35대, 채취견 5마리 등이 투입돼 수색한 결과 실종 나흘 만인 28일 오전 11시쯤 자택에서 2km 떨어진 마을 뒷산 풀숲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이곳은 할머니가 어렸을 때 학교를 다녔던 길이었다.

#. 2021년 8월 부산에서 70대 남편이 결혼한 지 40년 된 아내를 살해했다. 아내는 그해 4월부터 치매 증상이 시작됐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가 되자 남편은 '자식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지체장애 5급의 장애인인 남편은 간병인없이 아내와 둘이 살며 간호했는데 본인도 우울장애, 뇌경색, 치매의증 등이 발병했다.

최근 종영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순양그룹 회장(이성민 분)이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과 손자 진도준(송중기 분)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혼란스러워한다. 노인성 치매와 유사한 인지기능 장애를 보이는 '섬망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인지기능 장애가 심해지면서 드라마 속 진 회장도 어린아이가 됐다. 섬망은 갑자기 발생해 급격한 심리 변화를 보이고 수일 내 호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개월 동안 천천히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가 되지 않는 치매와는 구분된다. 하지만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 치매 발병률이 9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등 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치매 환자의 배우자나 자녀 등 보호자 가족이 치매 환자 돌봄에 주된 책임을 지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의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가중돼 갈등이 발생하거나 환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치료기관은 아니지만 치매 예방과 지원의 최전선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센터에선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 기저귀 등의 물품, 치매 환자의 실종을 예방할 수 있는 GPS가 탑재된 배회감지기 등을 지원한다. 보호자에겐 치매 관련 정보와 함께 다른 보호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보호자 간 자발적 정기모임인 '오미자' 활동을 지원해 보호자의 사회적 고립도 예방한다.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가 2022년 12월23일 치매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송년행사를 열고 2022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가 2022년 12월23일 치매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송년행사를 열고 2022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AD
2022년 12월23일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 이날은 센터가 자체 진행한 송년행사가 열렸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로해 주기 위한 자리였다. 50여명의 치매환자와 보호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해 5월 센터가 운영하는 대면 프로그램 재개 후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선물을 나눴다.

마술사 공연에 이어 '엄지손가락 피아노'로 불리는 칼림바 공연까지 이어지면서 행사는 절정을 이뤘다. 칼림바 공연은 경증 치매 어르신이 직접 연주했다. 센터 관계자는 "악보 볼 줄도 모르지만 칼림바에 번호를 붙여 6개월 동안 연습했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이 어린아이처럼 즐기고 이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센터 직원들까지 어울리며 서로 간 단단한 신뢰관계(라포)가 형성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송년행사에선 한 치매 환자 보호자의 극복 수기 낭독도 진행됐다. 해당 보호자는 2018년 50대 남편이 처음엔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술과 담배로 현실을 회피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기 검진을 진행한 담당 교수조차 당황할 정도로 빠르게 증상이 나빠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2022년 1월 치매 환자 등록을 망설이는 남편 손을 붙잡고 광진구 센터를 찾았고 이후 인지건강과 가족지원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았다고 밝혔다.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장인 문연실 건국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예방과 관리가 치료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행사처럼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교류하는 활동이 예방과 관리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가 2022년 12월23일 주최한 송년행사에서 경증 치매 환자 5명이 칼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가 2022년 12월23일 주최한 송년행사에서 경증 치매 환자 5명이 칼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AD
치매 환자에 건강보험, 얼마나 도움될까

2021년 기준 치매 환자 1인당 관리비용은 연 평균 2113만원 수준이다. 일반 치매 환자 관리비용 가운데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직접 의료비가 53.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간병비·교통비·보조물품 구입비 등을 포함한 직접 비의료비 32.7% ▲노인장기요양비 13% ▲간접비 1% 등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치매 상병자 1인당 연간 진료비는 약 303만원으로, 이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38만원가량을 부담해 환자 본인부담금은 65만원으로 줄어든다. 치매 상병자는 치매 증상으로 병원 외래진료를 받거나 입원, 약국 이용 등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

중증 치매자는 병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산정특례 신청서를 제출해 특례 대상자가 되면 진료비의 본인 부담분을 기존의 약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2020년 중증 치매 산정특례 대상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약 170만원으로 1인당 본인부담금은 약 20만원으로 줄어든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도 크다. 2020년 기준 중증 치매 단계인 1등급 상병자의 연간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는 1891만원이며 이 중 1인당 본인부담금은 약 10.7%인 203만원 수준이다. 건강보험이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반 가구보다 소득이 낮은 노인부부 가구에는 연간 20만원의 진료비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