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니S는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0일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외교부 제1차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장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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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는 북한이 지난해 12월 전술 핵무기 생산과 핵탄두 보유량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천명한 이후 더욱 경색됐다. 한·미 당국은 지난해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내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최종 결정만 남은 것으로 파악했다.
한반도 평화 셈법이 복잡해진 가운데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과 평화기획비서관, 외교부 제1차관 등을 역임한 외교·안보 핵심 인사다. 최 교수는 국가안보실에서 근무한 3년 동안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9.19 남북군사합의 등에 깊이 관여했다.
머니S는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최 교수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교수는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돼 마음 아프다"며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남북 간의 대화는 필수"라며 "이란핵합의(JCPOA) 복원 협상이 진행 중인 것처럼 남북도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핵합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좋은 사례"
![]()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머니S와 인터뷰를 통해 "이란핵합의(JCPOA)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당시 국무위원장·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2월28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에서 단독회담하는 모습. /사진=뉴스1(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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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해 마음이 매우 아프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더라면 지금쯤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실질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북미관계도 획기적으로 진전됐을 것이다.
- 회담은 미국이 북한에 '빅딜'(Big Deal)을 요구해 결렬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외 분강 지구의 고농축 우라늄 시설 폐기를 요구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특정 지역 시설의 폐기를 요구했다기보다 북한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는 '빅딜'을 원했다. 하지만 빅딜이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빅'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 입장에선 영변 폐기도 '빅'이다. 플루토늄과 트리티늄은 영변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변이 북핵 시설의 약 70%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영변에는 건물 298개 동이 있다. 이 같은 대규모 단지를 폐기하는 데는 많은 인력·시간이 필요하다. 북·미가 하노이 이후에도 대화를 이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북한에 '스몰딜'(Small Deal)을 요구하며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미 사이에 빅딜 관련 협의가 있었나.
▶몰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이 먼저 주겠다고 한 것을 받았어야 했다. 북한과 이란 같은 비 민주국가와 협상할 때 중요한 점은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일단 접수하고 더 받아내기 위해 협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영변 폐기를 제시하면 우선 그것을 받고 추가 협상을 통해 더 받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처럼 협상의 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 내 인권 문제 등을 배제하고 '우라늄 농축 제한'이라는 하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좋은 사례다.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이지 인권개선이 아니잖은가.
"영변 폐기, 북핵 동결 그 이상의 의미"
![]()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미가 영변 폐기로 합의를 봤더라면 사실상 북한에 미국 대사관이 개설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최 교수. /사진=장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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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농축 제한, 즉 동결은 북한이 영변을 내놓는 순간 '올드'한 방법이 됐다.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자체가 동결보다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폐기로 합의가 마무리됐더라면 '리비아 모델'처럼 아마 오늘날 '북한 모델'이라는 단어도 생겼을 것이다. 북한은 영변만 내놓은 것도 아니다. 지난 2018년 평양공동선언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창리 시험장과 동창리 엔진시험장의 영구 폐기를 제안했다. 실제로 이행하기도 했다. 우리가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 북·미가 '영변 폐기' 합의에 성공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우선 미국과 북한 측의 기술자들이 함께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게 될 것이다. 비핵국가인 우리는 핵무기 폐기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핵확산 행위로 간주돼 영변 폐기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무기급 우라늄·플루토늄 생산을 보는 것 자체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와 국무부, 재무부 등 각 부처는 영변에 인력을 파견할 것이다. 사실상 북한에 미국대사관이 개설되는 셈이다. 그러면 이들을 위한 보급품이 한국에서 판문점을 통해 올라갈 것이고 남북관계와 군사합의 등이 자연스레 진전될 것이다. 특히 군사합의는 애플리케이션처럼 계속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실제로 9·19 남북군사합의는 당시 안보실에서 탑-다운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군이 만들게 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을 꼭 칭찬하고 싶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국내 비판 등에도 군사합의를 잘 지켜내고 있다. 높이 평가한다. 군은 현장에서 군사합의가 효과가 있음을 체감한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 남북·북미 관계 개선이 이뤄져 2023년의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웠을 것이다.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속하는 데 종전협정이 적극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입구로써 종전선언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됐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운신의 폭이 제한됐다. 물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났다면 종전선언으로 비핵화의 문을 열고 평화협정으로 비핵화의 끝을 장식했을 것이다.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좋은 사례로 이란 핵합의를 언급했다. 이란과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대화를 2년째 진행 중이다. 지난 2020년 이후 대화가 사실상 단절된 남·북과 대비된다.
▶북한의 방역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북한은 지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국경을 봉쇄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북 정상 사이 친서는 꾸준히 교환됐다. 그 결과 군사통신선도 복원되지 않았는가. 아울러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 한국의 기여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관 재직 당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에게도 수차례 '이란 핵합의가 북한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이 진행중이던 오스트리아 빈에 가서 합의 당사국 관계자들과 연쇄회담을 한 이유기도 하다. 당시 빈에서 국내에 동결된 70억달러(약 8조7000억원) 이란 자금을 언급하며 "우리가 신문을 보고 합의 복원을 알게 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8년 이란 핵합의 탈퇴를 주도한 세력이 미국 의회 등 정치권에 포진해 있어 이란 핵합의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바이든 대통령도 합의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합의 복원을 위한 초안 작성 등은 어느 정도 완료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구금자 문제와 이란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문제, 탈퇴 방지 조항 등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 이란 측은 IRGC가 제재 명단에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IRGC가 제재 명단에 남아야 핵합의 복원 이후에도 러시아 기업들과 거래할 수 있어서다.
▶70억달러가 국내에 동결된 이유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정확히 말하면 IRGC 제재 때문이다. 미국은 IRGC의 자금줄인 이란중앙은행도 제재했다. 70억달러 동결이 풀리지 않는 이유다. 이란 측 요구는 동결을 해제하는 것인데 미국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평화프로세스의 연속성 중요"
![]() 사진은 지난 2021년 7월23일 최종건 당시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에 앞서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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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는 '실리 추구'로 요약된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도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날 당시 '미국의 국익을 위해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신중상주의, 보호주의로 요약된다. 사실 '국익을 위한 외교'가 맞다. (내가) 차관으로 재직할 당시 중앙아메리카(중미)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도 국익을 위해서다. 바이든 대통령 공약 중 하나가 중미 이민자 문제 해결이다. 이미 코이카(KOICA) 등에서 중미에 많은 공적개발원조(ODA)를 해왔다. 이를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제1회 한·중·미 라운드테이블을 만든 이유다. 지난 2021년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2021~2024년 중미 북부 삼각지대 국가와의 개발 협력에 대한 재정적 기여를 2억2000만달러(약 2700억원)로 증가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긴 배경이다. 당시 미국이 우리 측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
- 머니S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보수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에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0 평양공동선언을 승계할 필요가 있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우리가 지켜나가는 것처럼 연속성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안보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안보는 외부로는 협상을 통해 위협을 줄이고 내부로는 대응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키워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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