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위 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감기약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서 가장 많은 감기약에 사용되는 원료의약품 아세트아미노펜 공급을 사실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감기약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내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내수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 수출에 제동을 걸 지 이목이 쏠린다. 일각에선 '제2의 요소수 사태'를 우려한다. 정부의 감기약 공급 대책과 함께 아세트아미노펜을 포함한 원료의약품 자급 현황을 점검해봤다.
![]()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유행으로 정부가 시장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약사와 힘을 합쳤다. 업계에선 궁극적으로 감기약 수급 불균형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러 숙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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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감기약, 한분당 최대 사흘치만 드립니다"
②감기약 품귀 논란, 뭐가 문제길래
③낮은 자급률… '원료약 생산' 체질 개선의 딜레마
국내 제약사 18곳이 감기약 대량 생산에 나섰다. 정부가 겨울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의 동시 유행(트윈데믹)으로 인한 해열진통제의 수요에 대응해 감기약 생산을 독려한 결과다. 약국 현장에선 지난해 8월부터 감기약 수급이 불안정했던 만큼 이번 제약사의 결정으로 한시름 놨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다만 제약 업계에서는 감기약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제약사들에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650mg) 성분에 대해 2023년 11월까지 1년 동안 기존 공급량보다 월평균 50% 이상씩 추가 공급을 요청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진통제 성분으로 감기 등 통증 증상 완화에 사용된다. 감기약의 월 공급량을 기존 4500만정에서 매월 6760만정까지 늘리고 집중관리기간에는 7200만정을 생산해달라는 정부의 주문이었다. 겨울철 트윈데믹에 감기약의 수급 불균형이 예측돼 월별 수요량보다 공급량을 높이기로 했다.
후속 조치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을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으로 지정하고 국내 18개 제약사에 오는 4월까지 긴급 생산·수입 명령을 내렸다.
![]() 오유경 식약처장이 종근당의 감기약 생산 현장에 방문해 제약사 9곳의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지난 5일 종근당 천안공장을 방문해 감기약 생산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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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에 참석한 제약 기업들은 안정적인 원료의약품 수급을 위해 ▲주성분 제조원 추가를 위한 변경허가 ▲원료의약품 등록 등 행정절차의 신속한 처리 ▲주성분 제조원 변경 시 제출자료의 범위 완화 등 규제 사항을 먼저 적용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에선 그동안 감기약 수급 불균형이 악화한 요소로 두 가지를 꼽는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수요 증가다. 2022년 초 오미크론 변이의 유행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평균 30만명 이상 발생하면서 감기약 수요가 폭증했다. 제약사들도 감기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생산 공장을 24시간 풀가동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급량을 크게 늘렸으나 당시에는 감기약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는 가격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은 이미 특허가 만료돼 초저가 약으로 꼽힌다. 제약사가 감기약 생산에 매달릴 경우 매출은 늘어날 수 있지만 이익 측면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감기약 공장 생산 라인의 조정으로 다른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업계 일각에선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제품을 많이 생산할수록 손해를 본다고 한다. 이와 함께 사용량 연동 약가제가 감기약 생산 증대에 부담이 됐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일정 기간 동안 약의 사용량이 늘어날 경우 약가협상을 통해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값 상한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약가 인하를 우려한 일부 제약사들은 감기약 생산을 주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감기약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아세트아미노펜의 건강보험 약가를 한 알당 50~51원에서 70~90원대로 올리면서 제약사를 독려했다.
![]() 앞으로 수개월 내 감기약 공급이 다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발 리스크 때문이다. 약사가 감기약 보유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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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중국의 '보복성 조치'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가 유행 중인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 제한과 입국 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했다. 중국발 코로나19 유입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에 중국은 지난 10일 한국인의 단기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게다가 중국 내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감기약 생산을 위한 원료약 수출 금지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이 이 같은 결정을 단행할 경우 제2의 요소수 사태처럼 국내 감기약 생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감기약 수급 불안정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려면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수입 다변화 조치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다른 국가보다 리스크가 크다"며 "미리 수입처를 여러 국가로 넓혀 위험을 분산하거나 중장기적으로 국내 원료의약품을 일정 부분 자급화화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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