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르포] "대출이자 계속 나가는데 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나요"

[머니S리포트-'대한민국 빌라왕'] ③ '건축왕' 사기 행각에 쑥대밭된 미추홀구 가보니

신유진 기자VIEW 6,8112023.01.0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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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 명의로 다세대주택(빌라)과 오피스텔을 수십에서 수천 채 보유한 이른바 '빌라왕'의 사망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주거 안전판으로 여겨지던 '보증금반환보증'마저 뇌관으로 떠올랐다. 아파트값 폭등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저가주택 공급'이란 명분하에 지속해서 규제완화를 하며 난개발의 온상이 돼온 빌라는 전 재산과 다름없는 전세금 미반환 사태를 일으켜 세입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특히 정부는 2020년 법 개정을 통해 주택임대사업자의 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했다. 보증보험시장에서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가입 비율이 93%에 달해 전세부실 사태는 공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빌라왕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무이자 대출과 이주 지원 등을 결정, 사회적 비용의 손실도 불가피하게 됐다.
인천 미추홀구의 숭의동에 위치한 5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도시형생활주택. 해당 주택 입주민들은 한 사람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 /사진=신유진 기자
인천 미추홀구의 숭의동에 위치한 5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도시형생활주택. 해당 주택 입주민들은 한 사람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 /사진=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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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순서

(1) 규제 완화가 '빌라왕' 사태 키웠다

(2) 보험료 성실히 납부했는데… '보증금반환보증'의 배신

(3) [르포] "대출이자 계속 나가는데 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나요"

#. 2014년 서울 양천구 신월동 6층짜리 다세대주택의 꼭대기 층에 보증금 2억5000만원을 내고 전세로 입주한 직장인 차 모 씨. 차씨는 3년 뒤인 2017년 집주인이 전세 사기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전세 사기를 당한 지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집주인이 자신의 전셋집 주인과 동일 인물인 것. 차씨는 현재도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그새 대출은행과 국세청 등으로부터 여러 건의 압류가 걸려 있다. 아직 경매로 넘어가진 않았지만 차씨는 선순위 세입자인 만큼 우선 변제가 가능해 보증금 자체를 떼일 염려는 없다. 다만 경매가 개시돼 낙찰금액이 전세보증금 아래로 내려갈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차씨의 집주인인 강 모 씨는 이른바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방식으로 빌라 700채를 사들인 뒤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다. 사건 초기 강씨에게 당한 전세 피해자들은 단톡방을 만들어 공동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초기 400여명에 달하던 단톡방 참여자 수는 현재 60여명으로 줄었다. 차씨는 전세사기를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그 당시 많은 피해자가 나왔음에도 정부와 정치권조차 피해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귀를 닫은 채 손을 놓고만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당시에도 이 사건이 문제가 돼 국회에서도 논의가 됐지만 지역구 의원실 관계자는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이어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발을 뺐다"고 분개했다.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은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세대 발코니 곳곳에 전세사기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신유진 기자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은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세대 발코니 곳곳에 전세사기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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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서 갭투자로 빌라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김 모 씨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난리다. 전세사기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한 정부도 부랴부랴 피해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수많은 전세사기 사건으로 피해자가 속출했음에도 정부가 단순히 개인 간의 일로 치부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입자 울리는 인천의 '건축왕'
미추홀구에 위치한 또 다른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 역시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발코니마다 전세사기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신유진 기자
미추홀구에 위치한 또 다른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 역시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발코니마다 전세사기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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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빌라왕'이 있다면 인천 미추홀구에는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가 있다. 미추홀구 일대는 1~2개 동만 짓는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빌라천국'으로 불리는 화곡동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른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이 건축업자가 인천과 경기 일대에서 소유한 주택은 모두 2700채로 대부분 직접 신축했다. 건축업자는 10여 년 전부터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를 새로 짓고 나서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은 돈으로 또 다시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바지 임대업자들은 명의신탁 대가로 건축업자로부터 매달 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업자 등 공범들은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 327채의 전세금 26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돌려주지 않고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건축업자의 사기 행각으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이 지역 일대는 전세사기로 인해 쑥대밭이 됐다. 5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도시형생활주택. 하나는 2개동 56실로 꾸며져 있고 또 다른 도시형생활주택은 3개동에 72실로 구성돼 있다. 두 도시형생활주택 발코니 곳곳엔 '구제방안촉구',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라는 문구의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전세사기 연루설에 문닫은 중개업소들
또 다른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 역시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입주민들이 공동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와 함께 주의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사진=신유진 기자
또 다른 도시형 생활주택. 해당 주택 역시 전세사기를 당한 곳으로 입주민들이 공동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와 함께 주의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사진=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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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입주민 김 모 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했지만 전세사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며 "현재 10실 이상이 경매로 넘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에 이런 상황을 알리고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고 있다"며 "피해를 당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눈물만 난다"고 한숨지었다.

30대의 비교적 젊은 세입자는 "서울은 전셋값이 비싸 그나마 출퇴근이 가까운 이곳에 전세대출을 받아 입주했다"며 "대출이자는 계속 빠져나가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두 도시형생활주택과 약 2.5㎞ 떨어진 또 다른 도시형생활주택.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곳이다. 공동현관문 앞엔 '계약주의'라는 큰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옆 문엔 '집을 보러 오신 분께서도 또 다른 피해자나 공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의 채무불이행 조직적인 전세사기로 건물세대 모두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수사중인 전세사기 아파트입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이번 전세사기에 몇몇 공인중개업소가 연루됐다는 소문과 함께 숭의동 일대 일부 업소는 아예 문을 닫았다. 현지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중개업소의 (전세사기) 연루 소식에 떳떳하게 일하는 중개사들마저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무서워서 전셋집을 구할 수 있겠냐"며 "과도한 갭투자 자체를 막아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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