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청계광장] 가치 공유가 무색한 한·미 기술전쟁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외부기고가VIEW 2,8892022.09.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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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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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하는 미·중 갈등은 이미 경제적으로 단순한 무역과 관세전쟁을 벗어나 기술 패권과 기술표준 전쟁으로 진입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국제 규범을 확립하고 수호하겠다면서 민주 가치 동맹을 규합해 중국 배제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일련의 시도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친환경 투자를 확대하고 법인세 인상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했다. 통과시킨 '반도체 산업 육성법'(CHIPS+)과 더불어 미국이 최첨단 핵심 물자인 전기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공식 선언과 다름없다.

이 두 분야는 '수출 한국'의 주력 산업이다. 한국 전기차는 북미지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 만든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IRA의 '북미지역에서의 최종 조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 전기차는 중국에서 배터리를 수입해 최종 생산하므로 북미 최종 조립 요건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지 공장 설립도 향후 약 2년이 소요됨으로 당분간 가격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반도체 육성법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시 39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공장에 대한 첨단 시설 투자가 금지된다. 중국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40% 이상의 물량을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반도체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대중 투자와 시장 확보에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IRA가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는 강력한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 반응은 지지부진하다.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민주당이 밀어붙인 법안 탄생 배경을 볼 때 미국 정부의 재검토는 기대하기 어렵다. 반도체 법도 미국의 원천기술과 장비, 일본의 소재와 부품, 한국과 대만의 제조 기술이 결합한 폐쇄적 생태계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시도이므로 조정이 쉬울 리 없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은 한국 정부와 기업의 등에 칼을 꽂은 꼴이 됐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턴-키(Turn Key) 베이스로 공장을 유치해 기술과 인재 수급 문제까지 일거에 해결하려는 시도이며 배터리 분야 역시 미국이 통제하겠다는 사실상의 약탈 경제 색채까지 띠고 있다. 미국이 강조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자유경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가치 공유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정부의 분명한 입장 설파와 가능한 대응 방안의 적극 모색은 물론 기업의 초격차 기술 유지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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