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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아닌가봐"… 아직도 헤매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김영찬의 디자IN텔러]

김영찬 기자VIEW 2,1982022.05.2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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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 팀 버튼의 특별전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고 있다. 비록 2016년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은 없지만 '베트맨' '화성침공'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등 기괴하면서도 동화적인 스타일로 사랑받았던 감독이기에 수많은 시민들을 DDP로 불러모으고 있다.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 2호선 1번 출구로 나가면 DDP 지하 2층 어울림광장으로 이어진다. 비정형의 플라네리아 같은 건물 모습이 생소하지만 어울림광장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면 차례대로 살림터·배움터·알림터 입구가 나와 배움터에 있는 전시장 입구를 찾는 것은 소문처럼 어렵지 않다.

물론 이는 지하철 출구로 나갔을 때의 이야기이고 건물 입구로 들어갈 때까지의 이야기다. 지하철 출구 이외의 방향에서 DDP로 들어가거나 다른 건물로 들어가 전시장을 찾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 계단. 각 화살표 방향에 살림터·배움터·알림터가 있지만 출구 앞 어울림광장을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차례대로 해당 건물이 나온다. 화살표가 없어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사진=김영찬 기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 계단. 각 화살표 방향에 살림터·배움터·알림터가 있지만 출구 앞 어울림광장을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차례대로 해당 건물이 나온다. 화살표가 없어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사진=김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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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에서 길찾기가 어려운 이유
길을 헤매는 가장 큰 이유는 DDP가 해체주의 건물로서 일반적인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정문', 즉 눈에 띠는 하나의 출입구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지하철 출구 앞 어울림광장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그 독특한 모습으로 이정표 역할을 하지만 이 다리 또한 다른 여러 진입로 중 하나에 불과하다. DDP에는 지하 2층에만 열 한 개의 출구가 있고 지상 1층 8개, 지상 4층 2개, 총 21개의 출구가 있다. 이들 출구는 크기와 형태가 비슷비슷하다.

정문은 정문을 기준으로 건물의 상층과 하층, 전면과 후면, 좌익과 우익을 구분짓고 우리는 정문을 기준으로 그 중요도에 따라 사무실과 휴게실, 화장실과 창고를 배치한다. DDP는 이러한 '정문'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정치학, 즉 위계와 서열을 중시하는 중앙집중식 시스템을 거부한다.

중앙집중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문을 기준으로 자신의 현위치와 목적지를 찾는다. 합리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이만한 시스템도 없다. 문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이에 맞지 않는 구성원을 소외시키거나 차별하게 된다는 데 있다. 효율성의 입장에서 정문 앞 장애인주차장은 비효율의 극치다.

DDP는 '정문'을 없애버림으로써 이러한 중앙집중 시스템에 도전한다. 각 건물과 층의 구조를 다르게 하고 이들을 잇는 통로도 각기 다르게 만들어 공간의 중심축을 제거한다. 공간에 대한 해석과 사용을 관람객 각자에게 맞겨 다양성과 상대성을 높이려 한다. 설계자에게 이를 탓할 수는 없다. 모더니즘의 정형성·일관성을 비판하는 것이 해체주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해체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이 위계와 서열을 따지는 중앙집중식 행정시스템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점과 서울에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짓자는 목표 외에 별다른 목적도 없이 시작된 기획 덕분에 해체주의적 공간개념이 더욱 명확해 졌다는 점이다.

DDP 내부 복도 코너벽과 천장 사인시스템  /사진=김영찬 기자
DDP 내부 복도 코너벽과 천장 사인시스템 /사진=김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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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가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면
DDP에선 건축의 목적도 관람객도 헤매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헤매는 것과 설계를 이해 못 해 관람객을 헤매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DDP의 사인시스템은 모더니즘 스타일로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디자인적 완성도도 높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각 출구에 설치된 지도를 보면 관람객의 현위치와 목적지, 거리와 방향, 가는 방법 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투시도로 비정형 건축을 시각화하다보니 지도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지도가 건물의 미관을 헤치지 않는 곳에 설치되다 보니 지도의 방향과 실제 지형의 방향이 달라 길을 찾는데 애를 먹게 된다.

레이저로 만든 바닥의 화살표는 출구 바로 앞에 출구라고 써 놓는 식이거나 밖으로 나가면 옆 건물로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되어 있어 원하는 목적지를 찾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실 내외부에 부착된 층별 안내 사인도 마찬가지인데 사인만 보고 길을 찾으면 중간에서 길을 잃게 된다. 천장에 달아놓은 사인도 각 통로의 방향과 각이 맞지 않아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나마 통로 벽 코너마다 붙어 있는 사인만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

DDP에서 길찾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흐르고 만나야 하는 길 곳곳이 막혀있다는 점과 이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안내 데스크조차 여기저기 비어있는 마당에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제 기능도 못하는 사인을 덕지덕지 붙이기보다는 이런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기존 사인시스템을 철거하고 네이버 길찾기와 같은 DDP 전용 안내앱을 만들어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DDP가 개관한지 8년째다. 애초에 명확한 목적 없이 지어졌다고는 해도 이제는 제 길을 찾아야 한다. 시민의 혈세로 만든 공간에서 시민을 상대로 장사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버렸지만 DDP의 목적은 시민의 삶을 지금 보다 향상시키는데 있다. 이제 그 길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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