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부동산신탁사 ‘갑질’ 피해 호소하는 중소 건설업체

[머니S리포트](1) 폭주하는 부동산신탁시장 - 신탁사, 연간 7조원 발주 공룡

김노향 기자VIEW 21,8552022.01.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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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소유했지만 관리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경우 소유권을 신탁업체에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부동산 개발에 따른 복잡한 절차나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의 시행을 신탁업체에 의뢰하는 경우다. 하지만 리스크를 회피하겠다는 이유로 신탁업체가 일방적인 계약 조건을 강요해 위탁자·시공사·계약자 사이 법적 다툼도 적지 않다. 소유권을 신탁업체로 이전해 해당 부동산에 법적 소유권이 없음에도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기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신탁시장, 이대로 좋을까.
매출 기준 업계 1~2위인 한국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은 2021년 3분기 기준 계류된 소송 건수가 각각 238건, 187건에 달한다. 소송금액은 각각 2718억원, 1691억원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매출 기준 업계 1~2위인 한국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은 2021년 3분기 기준 계류된 소송 건수가 각각 238건, 187건에 달한다. 소송금액은 각각 2718억원, 1691억원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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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순서(1) 부동산신탁사 ‘갑질’ 피해 호소하는 중소 건설업체
(2) 부동산신탁시장 '330조' 성장… 1만원 벌면 '6000원' 이윤(3) 신탁담보대출 후 ‘불법 임대’… 세입자 울리는 집주인
#. 경기 오산시의 한 오피스텔·상가 복합건물 개발신탁을 맡은 A사는 2019년 사용승인 완료된 후 2년이 지나도 수익 정산을 미루고 매달 억대 수수료를 받아 챙겨 법적 시비를 가리게 됐다. 개발신탁은 신탁업체가 사업 주체가 돼 분양과 자금조달, 책임준공, 정산 등을 진행한다. 계약서상 준공 후 3개월 내 정산이 이뤄져야 했으나 A사는 분쟁을 이유로 정산 기일을 연기했고 상가 계약자들은 분양대금 반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신탁업체는 신탁업계 매출 1위이자 국내 대형 디벨로퍼의 계열사로 코스피에 상장됐다.



#. 신탁업체 B사는 2020년 7월 550여가구로 구성된 충남 아산시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입주자들은 아파트 하자에 대한 하자보수 보증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분양계약서상 하자보수 책임이 시공사에 있고 신탁계약을 해지하면 관련 책임은 위탁자인 입주자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시행사나 조합, 시공사 등이 신탁업체의 자금력을 이용해 안정적인 사업을 기대했다가 불공정계약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신탁보수가 2~4%로 낮은 데다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 보니 신탁방식 정비사업 등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시행사나 시공사에 불리한 계약조항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부동산 신탁업체가 시행 업무를 위임받아 조합설립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업기간을 1~2년 가량 줄이는 장점이 있다. 이자비용을 비롯해 전체 사업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자금을 제공하는 신탁업체 입장에선 리스크(위험) 회피가 가능하고 이 경우 시행사나 시공사가 불리한 계약조건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부 신탁업체와 시공사의 계약서 조항에는 신탁업체가 시공사에 책임준공 의무를 부여하고 공사기간 지연 등으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금을 부담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연간 7조원 발주… 무소불위 권한
통상 신탁사와 시공업체 간 계약 상 시공 과정에서 부실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탁업체는 해당 시공사와의 공사 도급계약을 해지하거나 클레임을 제기한다. 이 경우 해당 시공사는 시공권 포기는 물론 유치권 행사도 못할 수 있다. 결국 신탁사로부터 공사비를 받을 수 없어 하도급 업체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식적인 계약 관계와 집행이 아니라 신탁업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경우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신탁업체가 갑자기 설계변경을 요구하거나 (설계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늘어난 공사비를 시공사가 떠안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에 피해 사례를 전달하고 약정서의 약관 규제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협회에 따르면 지방의 중소건설업체일수록 불공정약관에 대응할 능력이 부족하고 신탁업체와의 계약으로 인해 파산에 이른 사례도 발생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신탁업체가 발주하는 건설공사는 연간 7조원 규모에 달해 신탁업체의 권한이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시공사뿐 아니라 부동산 관리·개발을 의뢰한 위탁자들도 ‘갑질 피해’를 호소하거나 법적 소송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매출 기준 업계 1~2위인 한국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은 2021년 3분기 기준 계류된 소송 건수가 각각 238건, 187건에 달한다. 소송금액은 각각 2718억원, 1691억원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당사는 다른 신탁업체 대비 관련 소송 건수와 소송금액이 상위권에 있지 않고 현재 시장 점유율 1위 회사라고 볼 수 없어 업계 입장을 대변해 의견을 밝히기가 어려운것으로 사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자산신탁은 별도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감독·처벌 강화해달라”
다른 신탁업계 관계자는 “각 사업장별로 손실 리스크 부담이 다르고 이를 반영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어서 모든 계약이 일방에만 유리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이 관계자는 “시공사의 신용도도 다 다를 수 있어 일부 리스크 있는 사업장에 한해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사업 전반에 걸쳐 신탁업체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주민 의견이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신탁방식을 꺼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 처음으로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하려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는 주민들의 반발로 신탁방식이 무산됐다. 신탁업체가 참여했음에도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해 조합방식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서초구 ‘방배7구역’은 2017년 한국자산신탁에 재건축을 의뢰했지만 사업이 지연돼 지난해 초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부동산신탁업은 현행법상 금융투자업으로 분류되고 주로 사업자를 계약 상대로 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신탁업은 일반 금융투자자를 보호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건설업계는 ‘건설산업기본법’을 통해 신탁업체를 발주처로 정하고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뿐 아니라 국토교통부의 부동산신탁업에 대한 감독과 처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 ‘부동산신탁계약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입법적 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문 디벨로퍼가 부족한 것은 건설산업의 약점이지만 부동산신탁은 이를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정주 연구위원은 “부동산 신탁업체가 전문 디벨로퍼로서 성장하기 위해선 시행사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리스크를 공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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