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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글로벌 모범국 새 역사 쓴다

[머니S리포트-진정한 G7을 향하여… 달라진 위상, 글로벌 리더 코리아②] 전쟁·IMF 이겨낸 힘으로 코로나 파고 넘어

권가림 기자VIEW 8,2112021.09.20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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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내총생산(GDP) 1조5868억달러,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글로벌 수출 6위·수입 9위의 무역강국.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을 수식하는 지표다. 불과 7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 차례나 이겨내며 위기에 강한 DNA를 심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주요 선진국보다 빠르고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며 세계의 모범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을 받아 사실상 G8 국가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국제 원조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웠던 최빈국에서 ‘잘 사는 나라’를 넘어 ‘글로벌 리더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행보를 따라가봤다.
울산석유화학 단지 공장 굴뚝에서는 쉼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사진=뉴스1
울산석유화학 단지 공장 굴뚝에서는 쉼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1부

(1) 세계가 인정한 ‘선진국’ 대한민국, G7과 어깨 나란히

(2)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글로벌 모범국 새 역사 쓴다

(3) “국가는 선진국됐는데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2부

(1) K-반도체, 글로벌 종합반도체 1위 비전 빨라진다

(2) K-배터리, 미래차에 ‘심장’ 단다

(3) K-조선, 초격차로 ‘세계 1위’ 지킨다

▶3부

(1) 친환경 힘주는 K-자동차, 미래차시장 정조준

(2) K-바이오, 2025년 ‘세계 5대 백신 강국’ 도약한다

(3) K-게임, 중국에 뺏긴 왕좌 재탈환 나선다

(4) 철강·화학, 수익성 확대 이어 ‘친환경으로 돌파’

(5) 잘 나가는 해운업계, 초대형·친환경 공격 행보로 승부수

(6) 현대·삼엔 등 주요 건설업체 ‘91.5억달러’ 해외 입찰 참여

(7) 글로벌 장벽 허문 ‘건강·식품·뷰티’ 청신호

(8) ‘플랫폼 파워’로 차세대 K-패션 주도한다

(9) 코로나 뚫고 쾌속 질주하는 K푸드·뷰티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의 한국전쟁을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70년도 채 안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여섯 번째로 큰 원조 공여국(다른 국가에 재화나 물자 따위로 도움을 주는 국가)이 됐다. 이 사이 농·수·축산물 수출국에서 자동차·반도체·전자·조선 등 첨단제품 위주의 수출국으로 변모, 세계 수출 순위 7위에 올랐다. 1953년 477억원이었던 GDP(국내총생산)는 2021년 2118조원으로 4만4400배 가량 증가하며 세계 10위에 랭크됐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글로벌 방역체계 표준을 선도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모범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장기반 닦은 중화학공업
1971년 청년봉사대원들 봉사활동 모습. /사진=뉴스1
1971년 청년봉사대원들 봉사활동 모습. /사진=뉴스1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성장 동력을 잃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산업시설은 모두 파괴돼 생산은 급격히 감소했다. 경제재건이 시급했지만 재원을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다. 폐허가 된 한국은 그나마 미국과 UN으로부터 원조를 받으며 버틸 수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20달러였다. 아프리카의 수단(140달러) 콩고(150달러) 가나(190달러) 잠비아(190달러) 가봉(330달러) 등 보다도 소득수준이 뒤떨어졌다.


한국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동 걸린 시기는 1960~70년대다. 철강·비철금속·조선·기계·전자·화학 산업을 중심으로 육성해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수입대체 공업화의 한계와 원자재·중간재 해외의존도 감축, 수출을 위해서라면 중화학공업 육성이 불가피했다.


금융, 외환 등 모든 정책 수단이 동원됐다. 정부는 중화학공업 기업들에게 운영자금을 시중금리보다 낮게 대출해줬고 세금도 적게 내도록 했다. 관세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보호 정책을 펼쳤다. 수출에 대한 의지는 거리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출은 국력의 총화’ ‘증산·수출·건설’이 쓰여진 현수막은 건물 벽, 육교, 관공서에 붙여 있었다.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갔다. 국내 최초 연산 10만톤 규모의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며 본격적인 석유화학산업이 시작됐고 여수석유화학단지, 대산석유화학단지가 잇따라 조성됐다. 국내에선 타이어, 신발, 플라스틱, 세제 등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화학공업의 성장을 위해선 제철소가 절실했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한국은 미국과 일본 정·재계를 설득하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협조를 구하러 뛰어다녔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에 제철소 사업은 과시용 사업”이라며 비웃었고 IBRD은 “제철소 건설은 시기상조”라며 한국의 융자 신청을 거절했다.


천신만고 끝에 포항 영일만 황무지엔 연산 103만톤 규모의 포항제철소 1기가 들어섰다. 포항제철소는 가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매출 1억달러를 돌파하며 흑자 전환했고 이후 2·3·4기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가 준공됐다. ‘영일만의 기적’은 철강의 수요산업인 조선·자동차·기계·전자 산업 성장을 뒷받침했다.


조선산업 역시 자본 부족으로 시작이 쉽지 않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들고 영국은행의 차관 도입에 성공한 사례는 유명하다. 이전까지 현대는 지도와 울산 미포만 사진, 유조선 도면을 들고 선주들을 쫓아다녔다. 현대조선중공업(현 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 구축과 동시에 대형 유조선 2척을 건조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조선사들은 새로운 건조공법도 개발해냈다. 세계 최초로 바다 위에 떠있는 플로팅 도크에서 선박을 건조하거나 선박 일부를 도크 밖에서 만든 뒤 접합하는 댐 공법 등이다. 유망산업을 찾던 기업들은 전자산업에 진출해 TV, 전자레인지, VCR 등 주요 전자 제품과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회로설계 기술을 확보했다.


국민들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것은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잘살기 운동이다.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길 확대, 다리 놓기, 상수도 설치 등 활동이 이어졌다. 축산, 경제작물 재배 등을 통해 농가소득도 높였다. 새마을운동 열기는 농촌으로, 도시로, 공장으로 뻗어나가며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국의 수출실적은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1964년 수출 실적이 1억달러를 돌파한 지 13년 만이다. 국민과 근로자, 관료들이 합심해 낳은 결과다. 당시 연간 수출액 100억달러를 넘어선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22개국뿐이었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1996년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9번째 회원국이 되면서 산업화로 이룬 개발도상국 꼬리표를 떼게 됐다.


금융위기 속 전화위복 저력 보인 한국
1998년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 모습. /사진=뉴스1
1998년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 모습. /사진=뉴스1
고속성장 뒤엔 그늘도 있었다. 기업들은 문어발식 투자나 대출을 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1996년의 무역적자는 230억달러, 외채는 1047억달러에 달했다. 제조업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396%였다. 두 차례 석유파동까지 터지면서 물가 폭등으로 사회 양극화는 심해졌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빠지며 위기는 더욱 커졌다.


이는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1997년 11월엔 외환보유액이 20억달러밖에 남지 않게 되자 다음달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한국은 550억달러의 빚을 진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1980년 이후 매년 6~10%씩 성장하던 경제성장률은 1998년 -5.5%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7%까지 상승했다.


한국은 정부·기업·국민 팀플레이를 통해 역대 최단기간 내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20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부실 은행에 쏟았고 일부 은행과 종합금융사를 퇴출했다. 5대 시중은행들은 해외에 매각되거나 합병됐다. 기업들도 인원 감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국민들도 힘을 모았다. 어른부터 아이, 어르신까지 줄을 서 결혼반지, 돌반지, 시계, 금두꺼비를 내놓으며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금 모으기에 동참한 사람은 약 351만명이다. 당시 약 22억달러 규모의 금 227톤이 모였다. 금은 해외로 수출돼 부족했던 외화를 확보하는데 쓰였다. 


수출하고 남은 금은 한국은행이 매입해 외환보유액에 추가됐다. 한국은 2004년 5월까지 갚도록 예정돼 있던 IMF 차입금을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조기에 상환했다.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3년8개월 만에 경제주권을 되찾은 셈이다.
 
국제표준 된 ‘K-방역’
서울 노원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마치고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노원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마치고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대혼란에 빠진 가운데서도 한국은 K-방역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했다. 한국은 끈질긴 감염 추적과 검사로 확진자와 접촉자를 빨리 찾아내 격리함으로써 지역사회 추가 확산을 막고 환자의 신속한 회복을 돕는 ‘K-방역’을 탄생시켰다. 특히 차량 안에 머문 상태에서 체온 측정, 검체 채취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진단키트, 생활치료센터도 한국의 대표 방역 방식이었다.


K-방역 시스템은 다른 국가들이 자문을 구할 정도의 국제 표준이 됐다. 코로나19 진단기기와 소독제 등 방역 관련 제품도 신뢰를 받았다. 지난해 보건산업 수출은 217억달러로 전년대비 38.3% 늘었다.


2021년 한국은 빈곤을 이겨내기 바빴던 1960년대와는 다른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1953년 477억원였던 명목 GDP는 지난해 1933조1524억원으로 뛰어올랐다. 1963년 100달러였던 GNI는 2020년 3만1881달러로 올랐다. 수출 100억달러를 꿈꾸던 한국은 세계 7위 수출대국에 올랐다. 1961년 4090만달러였던 수출액은 2020년 5112억달러로 불어났다.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글로벌 모범국 새 역사 쓴다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도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기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선진국 그룹은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이 UNCTAD 설립 때 이름을 올린 뒤 지금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오랜 역사가 깨진 셈이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중화학공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국가에서 석유화학 제품은 대표적인 효자 수출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소재를 만드는 화학산업의 경쟁력 덕분에 IT산업도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조선은 글로벌 수주 1위에 우뚝 서 있다. 한국에 첫 쇳물을 토했던 포스코는 조강생산량 기준 글로벌 6위에 올랐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와 탄소중립 규제로 플랫폼 기업들이 떠오르고 있다”며 “이처럼 자생한 새로운 산업군들이 앞으로 전통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창조는 늘 파괴를 수반한다”며 “새로운 산업군에 개입해 발목을 잡는다면 산업발전은 더디게 진행되는 만큼 자연스러운 경제 전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퇴색하고 분배·불평등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경제성장이 없으면 분배·불평등 문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 균형이 잡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가림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팀 권가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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