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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백신 예약시스템, 이제 질타보다는 격려를

팽동현 기자VIEW 2,1292021.09.0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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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백신 예약시스템, 이제 질타보다는 격려를
“시간과 예산을 좀 더 주신다면…” 옛날 만화영화에서 악당 편에 속한 과학자 캐릭터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멘트다. 이후에는 대체로 상사에게 ‘조인트를 까이는’ 전개가 그려진다. 어째 지금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백신이다. 언젠가부터 확진자 수만큼 백신 접종률에도 이목이 쏠린다. 사회적 거리를 그만둬도 될 날을 고대하는 심정은 마찬가지이리라. 한때는 백신 맞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비유되면서 매크로 프로그램과 대리 예약 등이 횡행하기도 했다.

때문에 지난 7월 코로나 백신 예약사이트가 뻗었을 때는 난리가 났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해결을 촉구했고 관계부처·기관들과 주요 IT기업들이 머리를 맞대 이른바 ‘어벤저스’가 구성됐다. 이들은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정상화하며 한국 IT업계의 저력을 보였다. 그새 질병관리청과 기존 시스템 구축기업은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했다.

앞서 살펴볼 게 있다. 과연 시간과 예산은 충분했나. 당초 백신 예약시스템은 기존 예방접종등록관리시스템의 일부로 추가 구축됐다. 올해 초 질병청이 사업공고를 냈고 중외정보기술이 단독 입찰해 수의계약을 맺었다.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 업체였기에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장터 조달시스템에 따르면 투찰금액은 14억6020만원이다. 제안요청서(RFP)에는 예약 기능 오픈까지 3개월여가 주어졌고 그대로 진행됐다.

한 SI(시스템통합)업계 관계자는 “제대로 구축하려면 70억~80억원에 시간도 배는 더 필요했을 것”이라며 “저 조건에 흔쾌히 응할 기업은 그때도 지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개선 작업에서도 병목이 발생하는 사용자 인증 부분만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난이도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공공정보화사업 고질병이 도져서 질병청이 발주를 잘못 낸 탓일까.

가장 먼저 백신 예약시스템 문제 해결에 투입됐고 ‘어벤저스’를 소집한 당사자인 김성훈 마스터PM(한국사회보장정보원 본부장)에게 물었다. 답은 “아니다”였다. 그는 “얀센 예약 때만 해도 기존 시스템으로 소화됐지 않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고 백신 수요가 급증할 것을 반년 전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특수한 상황에 따른 긴급 구축이었던 점도 감안할만하다.

일각에선 소프트웨어(SW)진흥법에 따른 대기업 공공사업 참여 제한 규정 때문에 불거진 문제라 주장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었고 해당 제도 관련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사업 조건부터 대기업의 구미를 당길지 의문이다. 개선 작업을 직접 수행한 기업 중 대기업으로 분류될 곳도 엄밀히 따지면 LG CNS뿐이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어 어디 하나 안 중요한 곳이 없었다”고 김 본부장은 강조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해 당장 손실을 감수하고 ‘에이스’들을 급파한 기업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다. ▲베스핀글로벌 ▲네이버클라우드가 각각 클라우드 전환과 운영을 맡았다. ▲LG CNS ▲한국오라클 ▲데이타헤븐 ▲바토스 ▲이글로벌시스템 ▲쌍용정보통신 ▲시스템어소시에이츠 ▲와탭랩스 ▲에스티씨랩이 시스템 개선을 수행했고 ▲제이드크로스는 솔루션을 제공했다. 이밖에 ▲네이버 ▲카카오 ▲KCB ▲통신3사(SKT·KT·LGU+)가 각사 인증 서비스 관련해 협업했다.

무엇보다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간·예산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함께 공공정보화사업 담당자들의 정보 교류와 역량 제고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1년 넘게 분투 중이고 이번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임한 것으로 알려진 질병청 담당자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부처·기관 관계자들에게도 격려가 필요하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모두’가 해낸 일을 바라보자.

팽동현 기자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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