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50조' 중국시장의 유혹… 만리장성 앞에 갈등하는 韓게임

[머니S리포트-中 갑질 지친 게임사, 새 시장 찾는다①] 늘어나는 외자판호?… 전문가들 "언제든 닫힐 시장" 경고

강소현 기자VIEW 9,6272021.07.1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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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아즈텍과 마야 왕국을 점령하며 약탈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숨겨진 섬 ‘엘도라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전설 속 엘도라도는 모든 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보석을 착용하고 황금판 위에 서 있는 ‘황금땅’으로 묘사됐다. 21세기 중국은 현대판 엘도라도다.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한 내수시장은 업계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성공이란 꿈은 ‘판호’라는 만리장성 앞에서 좌절됐다. 벽은 너무 높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부상도 잇따랐다. 전설 속 엘도라도에 의존하던 국내 게임업계가 새로운 전략 짜기에 나섰다.
한국산 게임에 대한 중국의 ‘외자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 물꼬가 트이면서 게임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산 게임에 대한 중국의 ‘외자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 물꼬가 트이면서 게임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산 게임에 대한 중국의 ‘외자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 물꼬가 트이면서 게임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를 계기로 빗장을 걸어잠근 이후 지난달까지 중국 내 유통을 허가받은 한국산 게임은 총 3건. 업계에선 그동안 막혔던 중국 수출길이 다시 열릴 것이란 전망과 함께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공존한다.
6개월 새 판호 3건… 검은사막 모바일이 반가운 이유는?
지난달 29일 펄어비스의 MMORPG ‘검은사막 모바일’이 외자판호를 발급받으면서 업계에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날 중국 판호 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신문출판총서가 홈페이지를 통해 판호를 발급받은 총 43종의 온라인게임 명단을 공시한 가운데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도 여기에 포함됐다. 펄어비스는 2019년 중국 당국에 파트너사를 통해 검은사막 모바일에 대한 판호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국내 게임에 판호를 발급한 건 올해 들어 두번째다. 앞서 핸드메이드게임즈가 개발한 '룸즈'(중국명 密室无尽之路)도 지난 2월 중국에서의 서비스를 허가받았다. 핸드메이드게임즈도 퍼블리싱을 맡겼던 일본 회사를 통해 펄어비스와 유사한 시기 판호를 신청했다. 
연도별 중국 외자판호 발급 건수. /그래픽=김은옥 기자
연도별 중국 외자판호 발급 건수. /그래픽=김은옥 기자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취해 오던 업계도 이어지는 판호 발급 소식에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중국이 발급하는 외자판호 건수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급된 외자판호가 97건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지난달까지 이미 76종이 승인받았다.


업계가 유독 검은사막 모바일의 중국 내 유통을 반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전형적인 국내 블록버스터급 모바일게임도 판호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서다. 이전까진 소규모 개발사의 콘솔 게임 위주로 발급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대형 블록버스터 게임이 판호를 받았다는 점에서 검은사막 모바일은 이전의 사례에 비해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엔씨소프트 ‘리니지 시리즈’ 등 대형 게임의 판호 발급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고 내다봤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도 지난달 29일 열린 ‘마블 퓨처 레볼루션’ 미디어 간담회에서 “검은사막 판호 발급으로 (넷마블 역시) 중국 진출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중국 수출길 청신호? “자국 게임 경쟁력 떨어지면 언제든 닫힌다”
게임업계가 바라본 판호발급 전망. /그래픽=김은옥 기자
게임업계가 바라본 판호발급 전망. /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렇다면 잇따른 판호 발급으로 중국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여전히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동안 판호 발급 증감이 중국 게임시장 상황과 궤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자국 게임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언제든지 판호 발급을 멈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5년부터 중국 정부는 자국 게임 개발 역량을 강화한다는 정책 기조 아래 해외게임 진입을 제한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진흥정책을 펼치며 기틀을 다졌다. 해외게임 유통 허가 심사를 의무화하는 판호 정책도 규제의 일환이다.


실제 2016년 판호 도입 이후 중국 게임시장 규모는 눈에 띄게 커졌다. 중국 게임시장의 판매수입(매출)은 2016년 1655억7000만위안(약 27조8000억원)에서 이듬해인 2017년 2036억700만위안(약 35조1575억원)으로 26.5% 늘었다. 이어 ▲2018년 2144억4300만위안(약 37조171억원) ▲2019년 2308억7700만위안(약 39조8539억원) ▲2020년 2786억8700만위안(약 48조1069억원) 등을 기록했다. 이 같은 성장세라면 2021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도별 중국 게임시장 규모. /그래픽=김은옥 기자
연도별 중국 게임시장 규모. /그래픽=김은옥 기자
최근 판호 발급 건수가 늘어난 것도 급격한 성장세인 자국 게임시장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 게임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인식은 몇 년 새 크게 달라졌다. 유명 게임을 그대로 베끼는가 하면 선정적인 광고를 앞세워 유저를 모은 탓에 뒤따랐던 ‘짝퉁’과 ‘저질’ 등의 수식어를 걷어내고 차별성 있는 게임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중국 게임업체 ‘미호요’가 지난해 9월 출시한 RPG ‘원신’이 대표적이다. 원신은 과금 요소를 줄인 데다 PC·모바일·콘솔을 오가면서 교차로 즐길 수 있다는 차별점을 내세우면서 중국 게임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 게임사는 막대한 자본력과 인재풀을 앞세워 세계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내수 시장과 정부 진흥 정책이 맞물려 산업과 시장 급성장을 달성했고 해당 성과를 바탕으로 슈퍼셀이나 라이엇게임즈 등 우수한 IP(지적재산권)를 가진 글로벌 게임개발사에 대한 투자와 인수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어 “게임 개발과 운영 관련 인력을 대거 흡수했기 때문에 중국 게임의 경쟁력이 자연스레 상승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판호는 화해 제스처” 외교에도 얽힌 판호, 정부 역할 중요
중국 게임업체 ‘미호요’가 지난해 9월 출시한 RPG ‘원신’은 과금 요소를 줄인 데다 PC·모바일·콘솔을 오가면서 교차로 즐길 수 있다는 차별점을 내세우면서 중국 게임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미호요
중국 게임업체 ‘미호요’가 지난해 9월 출시한 RPG ‘원신’은 과금 요소를 줄인 데다 PC·모바일·콘솔을 오가면서 교차로 즐길 수 있다는 차별점을 내세우면서 중국 게임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미호요
추후 미·중 관계의 변화도 판호 발급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판호가 양국의 정치적 판세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사드 사태로 촉발된 ‘한한령’ 이후 문재인-트럼프 정부의 파격적인 대북 평화 행보에서 중국은 소외되는 형국이었다”며 “(중국의 판호 발급 증가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에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진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도 “중국의 외자판호 건수 증감은 결국 자국 산업 보호와 정치·외교적 이익이 만나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결정하는 상황”이라며 “최근의 변화는 중국 내 자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중국 내부 판단과 향후 무역과 IP 분쟁 등에 대비한다는 외부 대응 전략을 모두 고려한 결과”라고 말했다.


중국 게임시장 상황이나 외교 관계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중국 수출길이 막힐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중국 정부는 외교 결과에 따라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신호만 줬을 뿐 언제든 빗장을 잠글 수 있다"고 진단하며 "정부와 업계가 조직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만 바라보는 상황이어서 섣부른 기대감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김정태 교수는 “올 초 취임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게임업계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며 “게임 주무부처 장관의 공적 네트워크를 통해 판호를 최대한 개방하는 것이 해외 수출을 확대하는 최선의 정책”이라고 밝혔다.


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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