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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고

김경은 기자VIEW 2,8422021.03.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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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고
K-푸드 대표기업들이 뜻밖의 매국 논란을 빚고 있다. 중국에 수출한 김치 관련 제품 포장지에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는 중국식 명칭으로 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김치를 자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김치공정’에 국내 기업들이 동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파오차이는 산초와 향신료를 바이주(중국술)와 함께 끓였다가 식힌 물에 고추·양파·샐러리 등 각종 채소를 넣어 절인 음식이다. 김치와는 다른 음식으로 오히려 피클이나 장아찌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은 ‘김치=파오차이’라는 막무가내 논리를 내세우며 김치공정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한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름의 속사정은 있다. 중국 당국이 현지에서 판매되는 김치 관련 제품을 파오차이로 표기하도록 강제하고 있어서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에 따르면 김치뿐 아니라 절임류 채소로 만든 식품은 전부 파오차이로 표기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현지 사업에 제한이 따른다. 이에 현지에서 김치를 생산·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모두 ‘울며 겨자 먹기’로 파오차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외 사업을 하려면 현지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 김치 무역수지는 11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데 김치 종주국으로서 수출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개별기업이 중국 당국을 상대로 맞서기엔 불가항력이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는 이달 내 김치 표기 관련 기업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공청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김치 수출 활성화와 올바른 김치 문화 전파를 위해 수차례 머리를 맞댔으나 달라진 게 없어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김치의 공식 한자 명칭을 ‘신치’(辛奇)로 지정하고 2014년 중국 등 중화권 국가에 상표등록을 마쳤다. 매울 신(辛)과 기이할 기(奇)를 사용해 맵고 신선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중국의 파오차이 표기 강요는 계속됐고 신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개정 ‘김치산업진흥법’은 오히려 김치 표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 김치’라는 용어를 쓰려면 배추와 고춧가루 등을 전부 국내산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수출 대상국의 통관에 따라 현지 재료를 사용하거나 현지에서 제조한 국내 기업의 김치조차 ‘한국 김치’로 표기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오판은 국내 기업이 김치를 김치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는 구실을 제공했다. 김치는 파오차이도 신치도 아닌 그저 김치일 뿐이다. ‘김치=파오차이’라는 중국의 논리에 맞서야 한다. 종주국 논란을 끊고 김치의 수출 활성화와 세계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김경은 기자

머니S 산업팀 김경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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