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연봉제 택배기사, 어쩌다 ‘건당 500원’ 받게 됐나

[이슈포커스-‘택배기사’ 빠진 택배 대책②] 인건비 줄인 본사, 중간에서 수익 챙긴 대리점

김경은 기자·정소영 기자VIEW 5,3752020.11.21 05:50
0

글자크기

기사 이미지
택배기사의 처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로 본사와 대리점으로 나눠져 있는 하도급 구조가 지목된다. /사진=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배송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업계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택배 물동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한 16억770만박스를 기록했다. 덩달아 택배회사들의 실적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정작 택배기사의 벌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송 1건을 수행하고 택배기사의 손에 남는 돈은 고작 500원 수준. 소비자가 내는 택배비 2500원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택배기사의 몫을 갉아먹는 택배사와 대리점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대리점 왜 필요한가… 결국 ‘돈’ 






택배사는 본사→ 대리점→ 택배기사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로 운영된다. 택배사가 지역별 대리점에 물량을 위탁하고 대리점은 기사에게 재위탁하는 형태다.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는 택배기사는 배송 건당 수수료로 소득을 얻는다. 


당초 택배사는 각 지역별로 관할 구역을 두고 물량을 관리하기 위해 대리점 체계를 도입했다. 다만 지금처럼 대리점과 택배기사를 각각 위탁 계약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본사에서 직영으로 대리점을 운영하고 택배기사도 연봉제로 직접 고용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택배 사업을 시작한 한진택배에 따르면 당시 택배 대리점은 전부 직영점으로 운영됐다. 한진택배 관계자는 “사업 초반엔 물량이 적었기 때문에 직영 체계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롯데택배 소속 대리점주 역시 “10여년 전 대리점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됐다”고 부연했다. 


택배업계가 직영점을 전부 대리점으로 돌린 건 2000년대 초반. TV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이 많아지면서 물량이 급증했기 때문. 이로 인해 월급과 4대보험료 등 인건비가 증가하자 택배기사가 건당 배송 수수료를 받도록 현행 대리점 체제로 전환했다. 


한진택배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물량이 증가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며 “이에 서브터미널을 설립하고 각 지역별로 대리점을 두면서 택배기사를 본사 소속에서 개인 사업자 형태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판매자→택배기사→서브터미널→허브터미널→서브터미널→택배기사→소비자로 이어지는 배송 단계가 이때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정작 대리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김세규 전국택배노조 교육국장은 “대리점 대신 본사에서 택배기사를 관리해도 충분하다”며 “현재 대리점들은 하는 일이 없고 오히려 택배기사에 대한 갑질과 각종 꼼수를 자행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택배산업 개선방안도 본사에서 해결할 문제이기에 대리점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장기적으로 대리점 폐지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정부가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도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정부는 택배사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게 비용·부담 전가를 유발하는 불공정한 계약 조건이나 거래 내용이 있는지 점검하겠다고만 언급했다. 


기사 이미지
택배기사 처우 문제가 대두되자 택배업계는 자동화 설비를 늘리겠다는 자구책을 내놨다.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건데 사실상 '셀프투자'에 가깝다. /사진=뉴스1






택배사, 실적은 좋은데 이익이 안 난다?






본사 소속이던 대리점과 택배기사를 각각 개인 사업자로 떼어내는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택배사는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주 5일·주 52시간 근무와 산재보험 가입 등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면서 수익 구조를 개선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덕분에 물량이 급증하면서 업계가 전례 없는 호황기다. ‘빅3’인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한진택배의 실적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상반기 매출액이 5조16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1.3% 올라 1420억4800만원을 기록했다. 3분기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5.8%, 4.3% 증가했다. 


다만 택배업계는 물량이 늘어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워낙 마진율이 낮고 고정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윤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서브터미널과 허브터미널을 오가는 간선차량 운행비용, 각 터미널 임대·유지·보수비, 터미널 상하차 업무 담당 도급기사(일용직) 일급 등이 고정비에 해당한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기업고객에게 받는 택배비 2200원 중 920원이 고정비용으로 사용된다. 택배 본사의 순이익은 70원뿐이라고 설명한다. 회사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은 전국 200여개 서브터미널에 자동화설비가 설치돼 있어 고정 비용이 훨씬 많다”고 강조했다.


택배사들은 낮은 영업이익률을 근거로 경영 사정이 녹록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영업이익률은 2.9%, 롯데글로벌로지스 0.7%, 한진택배 4.4%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CJ대한통운은 약 5조1000억원의 매출을 거둬 약 5조원을 영업비용으로 썼다. 운송비 3조3600억원, 인건비 4000억원, 감가상각비 2000억원 등이다. 






처우 개선 명목으로 쥐어짤까




현재 상황에서 택배기사가 받는 배송 수수료 인상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택배사들은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명목으로 투자 비용을 늘린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본사 소유 터미널에 자동화 설비를 늘린다는 건데 이는 결국 본사에 비용을 들이는 ‘셀프 투자’인 셈이다. 


CJ대한통운은 총 16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택배 터미널 100곳에 ‘소형 분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2022년 충북 진천 지역에 첨단 물류 터미널을 개점하고 택배 자동화 설비를 추가 도입할 방침이다. 한진택배도 500억원을 투자해 일부 작업장에 자동 분류기를 추가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휠소터(자동 분류기) 설치에만 1600억원이 든다”며 “(택배는) 인프라 사업이기에 자동화설비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들어가 본사 측에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경은 기자·정소영 기자

머니S 산업팀 김경은입니다.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관련기사 보기

오늘의 주요 뉴스에요

산업 한줄뉴스

상단으로 가기
하단 띠배너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