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자수첩] 미국은행은 왜 분실한 돈을 돌려줬나

이남의 기자VIEW 2,5602020.06.29 06:21
0

글자크기

기사 이미지
“헉! 내가 잃어버린 돈을 왜 은행이 돌려주지?”

2008년 기자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유학생활을 했을 때 학교 근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인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1500원에 달했다.

몇시간 후 ATM에 체크카드를 놓고 온 사실을 알아차린 기자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날렸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지점으로 달려갔다. 카드 사용내역을 뽑았더니 300달러가 넘는 돈이 결제된 상황.

기자는 먼저 분실한 카드의 사용을 중단하고 새 카드를 신청했다. 이어 은행원이 건넨 종이에 카드 분실상황 등을 작성했다. 내부 민원자료라는 설명에 별생각 없이 썼던 종이다.

하지만 2주 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체크카드를 재발급하러 은행을 방문한 기자에게 은행원은 “카드로 부정결제 된 300달러 중에 250달러를 돌려준다”고 했다. 기자가 작성한 종이에서 고의로 카드를 분실한 게 아니란 걸 파악했다는 이유였다. ‘은행이 내 돈을 왜 주지?’란 생각도 잠시, 돈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연신 ‘땡큐’를 외치고 나왔다.

이처럼 미국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한 ‘제로 라이어빌리티 프로텍션’(Zero-Liability Protection) 제도가 있다. 고의적인 행동이 아닌 이상 소비자에게 분실, 도용이나 해킹에 따른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의미다.

BOA를 포함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대형 은행과 비자, 마스터카드가 이 제도를 수행하며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가 고의성이 없다는 점만 확인되면 최대 50달러까지만 책임을 지면 된다.

국내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선 금융소비자보호법이 통과됐고 최근 금융위원회·과기정통부·법무부·대검찰청·경찰청 등 정부 부처는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소비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금융사 등이 원칙적으로 배상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부정결제에 대한 약관변경과 IT인프라 투자 등 기반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와 손해의 공평한 분담 원칙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소비자보호도 좋지만 설익은 제도는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국내 금융사가 투자자 보호를 바탕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성장하려면 근시안적인 대책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개인정보, 금융거래 보호 대책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뒤늦게 시작한 금소법이 취지를 지키고 관련 시스템을 갖추려면 대책의 속도보다 제대로 된 보완이 필요하다.


이남의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관련기사 보기

오늘의 주요 뉴스에요

금융 한줄뉴스

상단으로 가기
하단 띠배너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