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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G그룹 세운 주역, 구자경 명예회장 영원히 잠들다

김노향 기자VIEW 1,4592019.12.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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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타계한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1970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회장을 맡아 LG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19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LG연암문화재단과 LG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연구활동 지원과 사회공헌에 앞장서 재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연암 구인회 LG 창업 회장 슬하의 6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지수보통학교를 거쳐 부산사범대 부속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50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 이사로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활동을 시작했다. 뒤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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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구자경 명예회장(가운데)의 고려대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 수여식. / 사진제공=LG


구 명예회장은 형제간의 우애와 근검한 생활을 중요시하는 가통에서 장남으로서 책임감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이렇게 자리 잡은 가치관은 경영활동에도 면면히 이어져 경영자로서 스스로에게 엄격함을 유지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의식을 중요시했다.

그는 주로 생산현장에서 직원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해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폈다. 상자에 일일이 제품을 넣고 포장해 판매현장을 들고 다녔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허름한 야전점퍼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현장 노동자였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의 모태인 화학과 전자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후 가문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1970년 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끈 25년 동안 LG그룹은 연평균 50% 이상 매출이 성장했다. 종업원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꾸준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해외 진출을 통해 LG가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에 '강토소국 기술대국'을 강조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을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해 기초산업 분야의 전문인력을 육성했다. LG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사회공헌활동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1972년 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슬하에는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고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5월20일 별세했다.

선친의 갑작스런 타계로 경영권 승계 준비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구 명예회장은 “7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장남 구본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 구 명예회장은 분재와 난 가꾸기, 버섯 연구에 정성을 기울였다. 회사생활 50년 만에 맞은 자유인의 삶을 자연 속에서 누렸다.

김노향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한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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