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원의 사나이' 베일, 부상으로 내리막길 걷나 [김현준의 스포츠톡]

김현준 기자 | 2019.01.11 07:18
레알 마드리드 입단 후 18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가레스 베일(가운데). 잦은 부상으로 기대 이상만큼의 활약을 펼치진 못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가레스 베일(29·레알 마드리드)이 또다시 쓰러졌다.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지 5년 만에 벌써 18번째 부상을 당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유벤투스)와 리오넬 메시(31·FC 바르셀로나)에 이어 자연스레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할 것 같았던 베일은 깊은 부상의 늪에 빠지면서 이제는 경기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재능 넘치는 어린 풀백에서 EPL 최고 윙어로

베일은 ‘유망주의 산실’ 사우샘프턴 유스팀이 키워낸 ‘역작’이다. 베일을 포함해 시오 월컷(29·에버튼 FC),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25·리버풀 FC), 루크 쇼(2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서 활약한 다수의 선수들이 이곳을 거쳤다.

유소년 시절부터 베일의 재능은 특출났다. 14세에 이미 100m를 11.4초에 주파한 베일은 2005년 사우샘프턴 구단 역사상 윌콧에 이어 두번째로 어린 나이(16세 275일)에 프로로 데뷔했다. 국가대표도 2006년 5월 A매치에 데뷔해 웨일스 최연소 A매치 출전기록과 최연소 A매치 골 기록을 경신하며 영국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베일의 첫 포지션은 레프트백이었다. 엄청난 주력을 바탕으로 출중한 오버래핑 능력을 지녔던 베일은 2007년 토트넘 홋스퍼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베일은 토트넘에서 수비에 문제를 노출했으며 부상까지 겹치면서 포지션 경쟁자였던 베누아 아수-에코토(34·FC 메스)에 밀려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여기에 당시 후안데 라모스 전 감독이 이끌었던 토트넘이 11위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베일의 부진은 더욱 부각됐다.

베일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 인물은 2008년 10월 라모스 감독의 후임으로 토트넘에 부임한 해리 레드냅 전 감독이었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베일의 사우샘프턴 시절부터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는 레드냅 감독은 부임 후 베일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줬다. 그리고 베일은 레드냅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한 경기는 2010-201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인터 밀란 전이었다. 직전 시즌 이탈리아 구단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인터 밀란(인테르)은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와 조제 무리뉴 감독이 레알로 떠나면서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트레블 멤버가 건재한 강팀이었다.

실제로 1차전 당시 인테르는 전반전에만 4-0으로 앞서가며 낙승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때 베일이 놀랄만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이자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혔던 마이콘(37·은퇴)이 버티는 오른쪽 측면을 베일이 개인 능력으로 무참히 박살냈다. 이날 팀은 3-4로 석패했지만, 베일은 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2차전에서도 2도움을 올린 베일은 ‘디펜딩 챔피언’을 원맨쇼로 무너뜨렸다. 당시 베일의 활약상을 지켜본 한 팬이 ‘베일이 마이콘을 택시 태워 보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센세이셔널’했다.

이후 완전히 레프트윙으로 보직을 옮긴 베일은 이듬해 그의 재능을 마음껏 폭발시켰다. 2011-2012시즌 EPL에서만 10골 14도움을 기록하며 정상급 윙어로 성장한 베일은 2012-2013시즌에는 총 45경기 출전 26골 15도움을 뽑아내며 PFA(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에 등극했다.

레드냅 감독이 “당시 베일의 플레이를 매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고 회상할 정도로 베일의 플레이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185㎝ 81㎏이라는 훌륭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 호날두를 연상케 하는 무회전 킥, 속도와 정확성을 지닌 크로스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베일은 잉글랜드 무대의 새로운 지배자였다.

2013-2014시즌 코파 델 레이(국왕컵) 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레알 마드리드의 가레스 베일. 이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역전골을 뽑아내며 이적 첫 시즌에 9100만 유로(한화 약 1182억원)의 이적료가 아깝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사진=로이터

◆세계 최고 이적료로 레알 입단, 환상적인 첫 시즌

베일의 뛰어난 활약과 별개로 소속팀 토트넘은 아쉬운 성적을 냈다. 2012-2013시즌에도 ‘북런던 라이벌’ 아스날에게 시즌 막판 역전을 허용하며 단 승점 1점차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이때 호날두와 히카르도 카카(36·은퇴), 카림 벤제마(31·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수집했으나 ‘숙적’ FC 바르셀로나를 좀처럼 넘지 못한 레알은 베일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가 브라질 역대급 재능으로 꼽혔던 네이마르(26·파리 생제르망)까지 영입한 터라 레알은 적극적으로 베일 영입에 나섰다. 베일 역시 토트넘을 떠나 세계 최고의 명문에서 활약하고 싶어했다.

결국 베일은 호날두에 이어 당시 역대 두번째로 높은 금액인 9100만유로(한화 약 1182억원)로 ‘로스 블랑코스(흰 유니폼을 입는 레알의 애칭)’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베일은 시즌 초반부터 발목과 근육 통증 등 잔부상에 시달렸다. 레알에서 첫 16경기 동안 5번의 선발 출장에 그쳤던 베일은 부상을 털어낸 2013년 11월부터 활약하기 시작한다. 12월 바야돌리드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한 베일은 ‘BBC’라인의 일원으로 훌륭하게 활약하면서 레알 첫 시즌을 22골 16도움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베일이 가장 빛난 경기는 결승 무대였다. 2014년 4월 ‘엘 클라시코’로 치러진 코파 델 레이(국왕컵) 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하프라인부터 홀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면서 환상적인 결승골을 기록했다. 당시 베일을 추격했던 마르크 바르트라(27·레알 베티스)에게는 악몽과 같은 순간이었다.

베일의 활약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이어졌다. 경기 종료 직전 세르히오 라모스(32·레알 마드리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전에 접어든 상황에서 역전 헤딩골을 기록하며 레알이 12년 만에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라 데 시마(스페인어로 10회 우승)’라는 대업을 달성하는 데 공헌한다.

2016-2017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스포르팅 리스본전에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한 가레스 베일(왼쪽). 총 84일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사진=로이터

◆‘결승전의 사나이’로 등극… ‘부상 병동’으로도 전락

2014-2015시즌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쐐기골을 터뜨리며 ‘결승전의 사나이’로 등극한 베일은 직전 시즌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메날두 시대’ 후 세계 축구의 지배자로 거듭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포지션 문제가 부각됐다. 토트넘 시절의 베일은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롤’을 부여받았을 때 그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레알에는 이미 호날두라는 세계 축구의 지배자가 해당 포지션에서 시즌 50골 이상을 뽑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레알은 베일을 호날두의 조력자로 활용하기 위해 그를 오른쪽 측면에 배치했다.

해당 포지션에서도 제몫을 다한 베일이었으나 그의 플레이는 직선적인 돌파와 크로스 위주의 평범한 스타일로 일관되기 시작했다. 시즌 직전 근육량을 폭발적으로 늘리며 거친 몸싸움 가운데서도 날카로운 킥을 무리 없이 날릴 수 있는 선수가 됐으나 그를 상대하는 선수들은 그의 투박한 스타일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다.

해당 시즌 베일은 17골 10도움을 기록했으나 이전보다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레알은 호날두가 침묵했을 때 베일이 해결사로 나서기를 원했지만 베일의 모습은 그런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당시 레알도 전반기에는 클럽 역대 최고 기록인 22연승을 구가했으나 클럽 월드컵 이후 부진을 거듭하면서 시즌 무관에 그쳤다.

경기력 저하보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난 부상 빈도였다. 다소 갑작스럽게 벌크업을 시도한 베일의 몸은 점차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장딴지 부상으로 약 두달 가까이 쉰 베일은 같은해 10월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무려 17경기나 나서지 못했다. 복귀 후 크고 잦은 부상에 시달린 베일은 2010-2011시즌 이후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실패했다. 2016-2017시즌 베일이 결장한 경기 수는 무려 29차례에 달했다.

지난 시즌 총 25골을 터뜨리며 레알 입단 후 시즌 최다골을 기록한 베일이었으나 시즌 초 부상으로 신음하는 베일의 모습은 연례행사가 됐다. 해당 시즌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 투입 후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팀의 13번째 우승을 안겼던 베일은 이탈리아로 떠난 호날두를 대신해 레알의 새로운 에이스로 등극할 기회를 얻었다. 본인 역시도 부상 악령을 떨쳐 내고 최고의 몸 상태로 시즌에 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막 초반부터 탈이 났다. 지난해 9월부터 사타구니와 발목 부상에 신음한 베일은 복귀 일주일 만인 지난 4일(한국시간) 비야레알전에서 전반 39분 만에 왼쪽 종아리에 통증을 느끼며 교체 아웃됐다. 이날 경기 후 현지 매체들은 베일이 복귀하는 데 10~15일이 소요되는 만큼 2경기 결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레알 소속으로 190경기에 출전했던 베일의 부상 결장 경기 수는 어느덧 65회로 늘어났다. 곧 30대에 접어드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 속도도 더딜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천금 같은 결승골들을 넣으며 레알에 숱한 우승컵을 안겼던 베일이지만 레알 입단 당시 그를 향한 기대치를 고려한다면 부상으로 점철되고 있는 베일의 행보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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