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요, 부자든 아니든”

서대웅 기자 | 2019.01.03 06:20

사람들이 ‘펜’을 쥐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특별한 경험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 다양화되는 독립출판시장도 한몫했다. <머니S>는 독립출판시장에서 글쓰기 열풍의 진앙지를 들여다봤다. 동시에 펜을 쥔 ‘보통사람’들을 취재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글쓰기 훈련법도 소개한다. <편집자주>

[펜을 쥐는 사람들-중] 인터뷰-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소설가는 글만 안쓰면 참 좋은 직업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한 말이다. 창작의 고통을 표현한 말일 테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백지를 채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다. 천재 시인 기형도는 시 <빈집>에서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라고 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글을 쓰려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나 ‘책’을 펴내려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영상시대이자 디지털시대에 책을 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박하루 하루랩 대표. /사진제공=박하루 대표


◆일상이 책이 되는 사람

일상이 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집필이 주업무가 아니니 전문작가라고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책을 쓰기로 마음먹으면 단 하루 만에 원고를 작성한다. 그렇게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주요 대형서점의 매대에 그의 책들이 놓여있다. 그는 자신을 ‘보통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저 ‘일상을 책으로 담아내는 놀이’를 할 뿐이라고 소개한다. 박하루 하루랩 대표(33)다.

하루랩은 ‘하루’ 만에 책 쓰기가 가능한지 실험하는 ‘연구소’(Lab)다. 말이 연구소지 실제 공간이나 직원은 없다. 6년간 이어온 직장생활을 접고 자칭 이 연구소를 차렸다.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며 이름이 알려졌고 출판을 원하는 사람들을 고객 삼아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2015년 7월부터 현재까지 120여명의 보통사람들이 그를 만나 책을 펴냈다.

박 대표에게 책은 일종의 수단인 듯 보였다. 그는 최근에 펴낸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에서 일상에의 몰입을 재차 강조한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단 한시간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기록’은 그렇게 보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는 “시간에 관심이 많았다. 일하는 시간보다 여유시간이 많은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즉 박 대표에게 중요한 건 순간순간의 소소한 일상이다.

실제 그가 펴낸 책은 분야를 망라한다. 결혼식에서 느낀 ‘웃픈’(웃기면서 슬픈) 감정을 그린 동화, 평소 관심 있던 풍수를 접목해 공간을 정리하는 실용서, 다이빙을 다녀와 펴낸 사진집 등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렇다면 왜 ‘책’일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요즘, 자신을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가 출판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의 욕구’를 실재하는 것(책)으로 발산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이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있죠. SNS, 유튜브 등으로도 남길 수 있지만 휘발성이 강해요. 책은 기록을 위한 낭만적인 도구예요. 디지털로 남기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책을 펴내기 시작하며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게 영감의 원천이어서다. 비단 박 대표만 느낀 점은 아니다. 하루랩에서 책을 쓴 한 직장인은 ‘해마다 퇴사를 결심하다 직장을 돈 받고 창작하는 놀이터로 삼게 됐다’는 내용의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박 대표를 포함해 하루랩에서 글을 쓴 많은 이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펜을 잡는다.

“일상을 책으로 담아내는 놀이는 현재 진행형이에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책 쓰기는 평생 취미로 남을 듯해요. 책을 쓰는 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공감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도 아니에요. 그저 일상의 관심사를 책에 담아내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김세관 작가. /사진=서대웅 기자

◆‘정신’ 물려주고픈 노신사의 수필인생

‘꼴찌에게도 박수를’. 나락에 빠진 청춘에게 건네는 잠언 구절 같지만 한 야구수필집의 챕터 제목이다. 지난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2017 시즌까지 10여년간 꼴찌 수준에 머문 한화이글스 열혈팬이 쓴 <내일도 홈런>에서다.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쓴 39편의 수필을 한권으로 엮은 책이다. 한화이글스에 대한 전력 분석은 물론 인생과 야구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통찰까지 전한다.

야구 열혈팬이라고 해서 우락부락하거나 굉장히 활달할 듯하지만 저자는 조곤조곤한 백발의 노신사다. 김세관씨(67)가 본인을 ‘샌님’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38년의 교원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귀촌했다.

그는 야구광이기 전에 ‘기록광’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거의 매일 써왔다고 한다. 1978년 거주지역의 한 수필 동인지에 가입하며 수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1990년엔 월간 <수필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작가로 불리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일상의 기록을 동인지 회원과 나누는 데 만족한다고 했다.

“표현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에요. 명승지에 가서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도 같은 이치죠. 젊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죠. 글은 곧 그 사람이에요. 유명한 작가의 글에서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저는 제 주변 지인을 좀더 알고 싶어요. 평소 대화 나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 어떤 고민을 하는지가 더 궁금해요.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니까요.”

등단한 지 30여년,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40여년이 됐지만 <내일도 홈런>은 그의 두번째 책에 불과하다. 그는 책에서 “야구 대신 다른 곳에 정력을 바쳐 어떤 업적을 이뤘다 해도 대단한 의미가 있진 않겠다”고 썼다. “30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작품집이 겨우 하나뿐인 것도 미련이 없다”고도 했다. <내일도 홈런>엔 욕심 없이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며 살아온 그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요. 부자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사람 한명 한명은 모두 가치 있고 글엔 그 사람이 담겨 있으니까요. 훗날 자식들에게 재산도 좋지만 정신을 물려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 본 기사는 <머니S> 제573호(2018년 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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