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찾고 치유 받고… ‘펜’을 쥐는 사람들

김노향 기자 | 2019.01.02 06:15

[펜을 쥐는 사람들-상] 글쓰기에 빠진 ‘보통사람들’

사람들이 ‘펜’을 쥐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특별한 경험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 다양화되는 독립출판시장도 한몫했다. <머니S>는 독립출판시장에서 글쓰기 열풍의 진앙지를 들여다봤다. 동시에 펜을 쥔 ‘보통사람’들을 취재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글쓰기 훈련법도 소개한다. <편집자주>


문화계에서 ‘독립’은 주로 비주류 영역에 붙는 말이다. 상업자본 없이 오로지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하는 독립영화나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음악활동을 하는 인디밴드는 이윤이 1차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콘텐츠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사로잡는다. 내용과 형식은 평범해도 실험적이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독립콘텐츠가 출판시장에서 인기를 끈다. 기존 출판시장이 인터넷과 모바일에 밀려 침체된 상황에서 유튜브나 SNS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이름의 날개를 달아줬다. 때로는 이런 독립출판 작가가 기성 작가보다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스타반열에 오른다. 베스트셀러 수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독립출판업계의 성공사례다. 우울증을 앓던 작가 백세희씨는 회사를 다니며 이 책을 썼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싶었고 그 마음을 알아본 독자들은 크라우드펀딩으로 2000만원을 모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글쓰기에 빠진 현대인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경험해볼 만한, 그래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7권의 책을 쓴 작가 양은우씨는 “글로 사람들과 소통한다”고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그의 글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늦은 시간까지 TV를 켜놓은 게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는 등의 이야기다.

화려한 스펙이나 세계일주 같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평범한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나 전업주부의 육아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런 독립출판시장의 성장 배경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치유하려는 평범한 사람들과 거기서 공감을 얻으며 또 다른 치유를 원하는 독자들이 있다.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독립출판서점 ‘유어마인드’와 함께 2009년부터 해마다 독립출판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 온라인 기획전을 연다. 독립출판 작가와 독자, 제작자가 직접 만나 교류하고 판매도 하는 행사다. 지난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영국 등의 약 220개팀, 2만명이 방문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독립출판이 기성 출판시장의 대안에서 나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포털 등 글쓰기 판로 확대

포털사이트에 ‘독립출판’ 단어를 검색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출판사와 플랫폼이 등장한다. 국내 2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카카오는 포스트, 브런치라는 플랫폼으로 작가와 출판사를 연계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1인출판, POD(Publish On Demand) 등의 새로운 방식도 생겨나 독립출판시장의 수요를 뒷받침한다.

POD는 기존 자비 출판과는 다른 개념이다. 종이책을 미리 인쇄하지 않고 소비자가 구매를 주문하면 레이저프린터로 그때그때 제작하는 방식이다. 주문형출판이라고도 한다.

책을 내고 싶지만 출판사의 채택을 받지 못한 원고를 비용 없이 출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책 주문이 들어온 후에 비용이 들어가고 판매수익금을 작가와 출판사가 공유하기 때문에 양쪽 다 제작비 부담이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재고문제도 해결해준다.

POD 역시 과거에는 기술적인 제약으로 비용이 높았으나 지금은 대중화돼 누구나 원하면 책을 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 됐다.

이렇게 세상에 내놓은 책이 유명해져 기성 출판시장을 뛰어넘기도 한다. 2012년 해리포터 시리즈 판매량을 뛰어넘은 로맨스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는 POD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0년 영국 시장조사기관 PIRA 자료에 따르면 2013~2014년 한국의 아날로그 프린팅시장은 19.6% 감소한 반면 디지털 프린팅시장은 77.3% 증가했다. 북미 POD시장 규모는 2009~2010년 25% 증가한 30억달러에 달해 전체 출판시장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2014~2015년 5%에서 15%로 성장했다. 국내 POD시장 규모도 이와 비슷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POD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 라이트닝 소스(Lightning Source)다. 라이트닝 소스는 반스앤노블, 아마존, 도서관 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제작하는데 약 2만4000개 출판사와 거래하며 종이책 1억2000만부를 출판했다.
/사진=뉴시스

◆마케팅·판매 제약도 해소

독립출판을 선택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원고 집필뿐 아니라 교열·디자인, 서점으로의 유통, 마게팅까지 스스로 한다. 이 과정이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독립출판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신청과 인쇄소, 서점을 대신 섭외해주는 대행업체들이 생겨났다. 또 블로그나 SNS를 통해 작가를 섭외하고 독립출판을 기획하는 출판사도 늘어나는 추세라 앞으로 독립출판시장은 점차 커질 전망이다.

이를테면 카카오가 운영하는 브런치 POD 출판은 작가가 원고를 보내면 ISBN 발행과 인쇄, 유통을 연계해준다. 10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교열과 디자인도 맡길 수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신춘문예에 등단하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을 만큼 작가의 문턱이 낮아진 데다 독립출판 작가들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 자체로도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통사람이 쓴 글의 힘, 그 다양함이 공적인 목소리가 돼 많은 이의 삶을 위로하는 독립출판물은 현대사회의 작은 진보 아닐까.

☞ 본 기사는 <머니S> 제573호(2018년 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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