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영권 위기, '한진칼'의 교훈

장우진 기자 | 2018.12.25 06:12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을 9% 확보하면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권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경영권 붕괴보다 ‘자율경영’(또는 마음대로 경영)에 제동이 걸린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KCGI가 지분을 확보한 이후 한진칼의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조 회장 일가의 경영체제보다 다른 주주의 경영 참여가 더 반가운 모습이다.

통상 오너일가의 경영권에 흔들림이 생길 경우 회사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안심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미국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등장했을 때 주가가 요동쳤다.

하지만 한진그룹 사태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라 보인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사태’ 등 조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들의 갑질 사태가 잇따라 터지고 최근에는 조 회장이 불법으로 ‘사무장 약국’을 운영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투명경영이 실종된 모습이다.

회사 차원에서 경영개선의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한진그룹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해 2014년 한진칼을 설립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경영 측면에서도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보유해 사업구조도 안정적이다. 외부 시선이 비록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진 투자자들은 오너일가를 주축으로 한 일원화 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현 체제보다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는 듯하다. 지난 14일 한진칼 주가는 3만550원으로 KCGI가 지분 9% 보유를 공시한 지난달 15일에 비해 23.4% 올랐다. 

KCGI는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자사주매입, 사업전략 및 구조 조정방안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칼호텔네트워크 등 그룹의 유휴자산 활용방안도 독려하고 확보한 자금을 주주환원이나 재무구조 개선에 사용할 것도 요구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결정은 다른 주주의 호응을 얻어야 힘을 받을 수 있는데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한 만큼 주주들의 호응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KCGI를 비롯해 국민연금, 크레디트스위스,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지분율은 25.08%로 조 회장 일가 지분율(28.96%)에 육박한다.

지난 5일 한진칼은 단기차입금 규모를 1650억원에서 3250억원으로 늘린다고 공시했다. 차입금 증가로 자산이 2조원을 넘게 되면 감사 선임 대신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지분 9%를 보유한 KCGI는 주주로서 영향력도 3%로 낮아져 조 회장 일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KCGI는 한진칼이 차입금을 늘려 감사 선임을 방해할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주주행동주의의 경영참여가 본격화 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피같은 돈을 투자한 일반투자자들도 지배구조 개편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이 아닌 투명한 지배구조를 바라는 주주들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은 기자 혼자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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