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희망' 꺾는 보험사 소송비용 500억

김정훈 기자 | 2018.10.30 06:26
2018국정감사에서 보험사 소송비 문제가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십자포화를 맞았다. 보험사들이 소비자 민원소송비로 연간 100억원 이상 썼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돈의 액수보다 소송으로 고객을 우롱한 보험사의 행태에 있다.

국감에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상반기 39개 생명·손해보험사가 쓴 소송비용이 총 62억6800만원이라고 밝혔다. 보험사 소송비용은 2015년 160억7400만원, 2016년 165억3200만원, 지난해 155억8100만원으로 최근 3년간 쓴 소송비가 500억원에 달했다. 매년 100억원이 넘는 돈을 소송에 쓰는 셈이다.

지난 3년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처리한 보험 분쟁은 6만5307건으로 이 중 실제 분조위에 회부된 건은 49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인용결정이 난 건수는 36건이다. 최종 분조위에 올라가 인용결정이 난 건이 6만여건 중 단 36건이란 얘기다. 전체 대비 0.056%의 비율로 0.1%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인용결정 건이 적은 이유는 보험사 소송 탓이 크다. 현행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분쟁조정 신청 후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건은 분조위 회부 자체가 막힌다. 최종 분조위에 가기 전 소송이란 벽에 막혀 민원제기자는 조정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보험사는 왜 500억원이나 되는 돈을 소송 제기에 썼을까. 소송비용이 보험료 지급보다 싸게 먹혀서다. 금감원에 접수된 보험분쟁 6만여건 중 보험사의 소제기로 각하된 경우가 8201건이다. 건당 1000만원으로 잡아도 8000억원이 넘는다. 민원인별 분쟁금액이 천차만별이라 금액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국감에서 제 의원은 5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조정 건에 대해 분쟁조정 과정 중에 소제기를 금지하는 금융위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험사들이 5000만원 이하 소액분쟁에서 무분별한 소제기를 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소송비가 순전히 보험사 비용으로 처리된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소송비는 보험사에서 사업비로 분류된다. 사업비 증가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소비자는 소송에서 자신의 돈을 보험사에 쥐어주고 싸움을 벌이는 셈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불공정한 민원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8000여건에 달하는 민원 전부가 불공정하다고 보험사는 말할 수 있을까. 만약 단 1건의 민원이라도 소제기로 무력화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그 자체로 보험사는 과오를 범한 셈이다. 

당국도 8000여건의 민원을 보험사 소제기 덕에 분조위에 올리지 않는 '행정편의'를 봤다. 수 년전부터 보험사 과다 소송에 대해 칼을 뽑겠다고 외쳤지만 '시늉'에 그쳤다. 

보험사가 민원인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게 하는 '희망'이다.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한 보험사가 안면을 바꿔 고객 돈으로 그들의 '희망'을 꺾는 일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천명한 소비자보호의 시작은 보험금을 필요로 하는 절실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4호(2018년 10월31일~11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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