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재단 '두 얼굴'] 선진국은 받는 만큼 '환원'

장효원 기자 | 2017.11.24 05:21

이익환원, 사회공헌 등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의 재단법인. 이들 공익재단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끝 앞에 섰다. 공정위는 다음달부터 재벌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배경이 공익사업을 위한 것인지, 오너 일가의 상속을 위한 통로인지 따져보겠다는 것. 이에 <머니S>가 기업 공익재단의 두 얼굴을 파헤쳐봤다.


공익재단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기업의 본분이 이윤추구라는 점에서 공익재단은 기업과 멀어 보인다. 하지만 기업의 자본력이 공익목적으로 활용될 때 사회 전체 효용은 늘어난다. 따라서 공익재단은 오너의 세금회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 안된다.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정부의 적절한 제도 도입과 기업의 자발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공익재단이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선진국은 기업과 공익재단 역할의 중심을 어떻게 잡았을까.

◆미국: 혜택 줄이고 감시·의무 늘리고

미국의 민간공익재단은 미국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공익재단은 20세기 초 막대한 부를 쌓은 자본가들이 산업화과정에서 마주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출발했다. 정부가 미처 보지 못한 영역에서 공익재단은 그 역할을 수행했다.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학문·예술·문화 등을 육성했다.

하지만 미국 민간공익재단도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과 비슷하게 초창기에는 세금회피 논란을 겪었다. 부정적인 시각은 1936년 연방 상속세가 인상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때 미국 공익재단은 기존 1940개에서 5400개로 폭증했다. 세제혜택을 노리고 재단을 이용하는 자본가들이 늘어난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미국은 1969년 세제개혁법령을 시행했다. 개인이나 기업이 설립한 민간공익재단을 면세기관으로 분류하면서도 일반대중이 기부하는 지역재단과 자선단체와 비교할 때 세제혜택 정도를 대폭 줄였다. 외부감사 등 필수적으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또 보유 중인 기금자산의 5% 이상을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의무도 부여했다. 혜택을 주면서도 기업이 편법으로 재단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규제를 마련한 것이다.

박태규 기부문화연구소 기부문화분과 연구위원은 “미국은 민간재단의 공익성에 대한 기대와 사회적 우려를 합리적 법안으로 절충한 것”이라며 “한국에서 민간공익재단의 변화를 논의할 때 참고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민간공익재단은 건전한 발전과 함께 사회기여도를 높였다. 미국 파운데이션센터(Foundation center) 자료에 따르면 미국 민간공익재단은 8만6192개가 운영된다. 전체 자산규모는 7150억달러(약 795조원)로 1년간 공익을 목적으로 지출되는 자금이 570억달러(약 63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내 공익영역으로 유입된 전체 기부금의 16% 수준으로 1970년대 6%에서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제도에 적응하며 성장한 자본가의 공익재단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거듭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록펠러재단이다. 1870년 ‘석유왕’ 존 데이슨 록펠러는 오하이오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해 록펠러 가문을 대부호로 만들었다.

그는 1913년 록펠러재단을 만들었는데 100여년이 흐른 지금 록펠러재단은 자선사업을 위한 공익재단으로 더 유명하다. 록펠러재단은 의료와 보건문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연구지원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등에서 식량증산을 위한 녹색혁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재단,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만든 카네기재단 등도 미국의 교육·문화·기술발전에 기여한 대표적 공익재단이다.




◆스웨덴: 국민 존경받는 발렌베리그룹

공익재단의 모범적 사례를 꼽을 때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발렌베리 가문은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창업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현재 스칸디나비스카엔실다은행)을 시작으로 160여년간 5대째 이어온 명가다. 현재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사브 등 스웨덴 대표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했다.

이처럼 발렌베리그룹은 2010년 기준 연매출액 1100억달러(약 121조원)로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전체 인구의 4.5%가 그룹에 소속돼 일할 정도로 크지만 스웨덴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다.

그들이 오랜 기간 세습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국민에게 추앙받는 이유는 가문의 기업 소유방식과 이익의 사회환원에서 찾을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1916년 투자회사 인베스토르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로서 모든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인베스토르의 지분은 15개 발렌베리 가문의 공익재단이 나눠 보유 중인데 크누트-앨리스 발렌베리, 마리안-마르쿠스 발렌베리, 마르쿠스-아말리아 발렌베리 등 대표적인 3개 재단이 가진 지분이 42.9%에 달한다. 160년간 재단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고 축적한 부의 대부분을 3개 재단으로 나눈 것이다.

발렌베리그룹은 지주회사에 모인 이익금 중 85%를 매년 법인세로 납부한다. 1938년 가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높은 법인세를 내기로 정부, 노조 등과 체결한 협약을 따르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은 재단 소유 주식의 의결권을 최대 10배까지 부여해 낮은 지분율로 높은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다.

높은 법인세를 냈음에도 발렌베리그룹은 재단을 통해 그룹의 이익금 전액을 스웨덴의 기초기술과 학술지원 등 공익목적에 활용한다. 대학·도서관·박물관을 건립해서 사회 전체가 혜택을 보게 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 중 가장 큰 규모의 크누트-앨리스 발렌베리재단은 설립된 후 100년간 총 135억크로나(약 2조300억원)를 기부했다. 스웨덴의 과학자 중 발렌베리재단의 연구자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공익재단을 통해 이익금이 귀속되다 보니 발렌베리 가문이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지만 스웨덴 부자명단에 개인이 오르는 일은 드물다. 드러내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발렌베리 가문의 정신이 그들을 오래도록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5호(2017년 1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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