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 2017.10.27 05:59

/사진=이미지투데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모자를 눌러 쓴 건장한 남성들이 20kg이나 되는 짐을 메고 산을 오릅니다. 중턱에 다다랐을 즈음. 무거운 짐을 내리기가 무섭게 그들은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적막감이 감도는 그곳에서 웅크린 채 누워있는 한 남자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편지 한통.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 일은 더더욱 없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역시 이렇게 적을 막아 쓰러짐은 내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출처: 국방일보)

◆영화 원작, 50년 만에 부부 해후까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전쟁의 전사자 유해와 유품을 발굴하다가 발견한 이 편지는 ‘한 무명 학도병’이 쓴 것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의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유해발굴사업이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을 맞아 한시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사업 지속추진'이 결정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유해발굴감식단은 육군 내 일개부서에서 대통령령으로 국방부 내 정식 부대로 승격했다. 필자도 6·25전쟁 중 사망한 친지가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의 첫 장면에 6·25 전사자의 유품 만년필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역사상 <실미도>에 이어 두번째로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것은 2000년 4월 경북 칠곡군 다부동 고지에서 발굴된 고 최승갑 일병의 유해와 유품이다.

이름이 새겨진 삼각자와 호루라기 등의 유품을 근거로 유족을 찾았다. 발굴 현장에 온 고인의 부인은 호루라기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부부의 해후는 50년 만에 그렇게 이뤄졌다. 고인이 6·25전쟁 발발 일주일 전 휴가 나왔을 때 유품인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있었다고 한다.

헤어진 부부를 다시 만나게 한 이들은 육군 6·25 참전 전사자 유해발굴반이었다. 이곳은 신원확인사업을 본격 추진한 결과 지금은 DNA 감식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을 갖췄다. 전사자의 유해와 유가족 간 유전자 비교를 통해 친족관계를 확인하며 감식결과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관리한다.

지난달 30일까지 완료된 6·25 전사자 유가족 DNA 시료채취는 총 3만9596건이다. 한국의 유해발굴감식단 내 중앙감식소는 미국 실종자확인사령부 감식소와 함께 인골 DB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유족을 찾은 후 드러나는 사연도 다양하다. 눈물 겨운 사연이 많지만 조카를 찾아 DNA 분석을 하니 혈연 관계가 없어서 전쟁통에 본인도 몰랐던 아픈 가족사를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습 못한 유해 12만구…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유해발굴감식단은 일명 마크리(MAKRI)로 불린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고 군생활을 통해 의미를 찾고 싶은 청년은 유해발굴 임무를 수행하는 ‘유해발굴기록병’이나 발굴된 유해 감식임무를 수행하는 ‘유해발굴감식병’에 지원할 수 있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되는 구조다. 전문특기병으로 전공·경력에 관한 자격요건이 있다. 유해발굴은 추운 겨울을 피해 3~11월에 이뤄진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 6팀을 이끄는 류수은 중사는 강원도 양구군 유해 발굴 현장 인근에서 지난 5월26일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투가 끝난 이후 전사자들은 땅 위에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누가 묻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전쟁 이후 67년이 지나는 동안 낙엽이 떨어지고 흙이 쌓여 보통 지표면 밑 30~40㎝에서 유해가 출토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고 나라가 힘들어서 그분들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저희가 그분들을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는 아군 9508구를 포함해 총 1만809구에 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수습하지 못한 유해가 한반도 전역에 12만구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당시 교전 지역을 찾는 게 어려우며 경기도 파주 일대처럼 격전지였던 곳이 신도시로 개발되는 경우도 있어 애로사항이 크다. 6·25전쟁을 직접 겪은 어르신들도 세월이 흐를수록 그 숫자가 줄어들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창설식에서 김영룡 당시 국방부 차관은 "유해발굴사업은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무한책임을 이행하려는 것"이라며 "호국영령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소중한 사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한 이후 북진에 나선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이 10월1일이다. 1956년부터 10월1일을 육·해·공군 ‘국군의 날’로 기념한다. 광복 70년째 되는 올해 10월은 국방부에서 '강한 국군의 달'로 정해 각종 행사를 기획했다.

건군 67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는 추석 연휴로 앞당겨져 지난달 28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렸다. 그리고 지상군 페스티벌 2017(충남 계룡대 비상활주로 일대, 10.08~10.12),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7(서울공항, 10.17~10.22), 국제 해양방위산업전(부산 벡스코, 10.24~10.27)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불확실한 미래 대비할 때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의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전쟁이 또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최근 추석 연휴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허점이 있거나 힘이 부족하면 적의 침략에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철저한 대비가 중요하다.

청나라 군대가 남한산성에 대규모 공격을 예고한 정월대보름이 다가오자 인조(박해일 분)는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문장가 김상헌(김윤석 분)에게 항복 문서를 쓰라 명한다. 하지만 김상헌이 오랑캐에게 무릎 꿇고 삶을 구걸하는 것에 불복하자 최명길(이병헌 분)이 나서서 항서를 작성한다. 최명길은 조선시대 유일하게 한 해에 생원시, 진사시, 문과에 모두 급제한 인물로서 광해군을 임금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인조가 임금이 되게 한 반정 공신이다.

영화에서는 인조가 항복할 때 김상헌이 자결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결하지 않고 낙향했으며 한 때 청나라 심양의 감옥에 투옥되지만 80세 넘도록 장수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을 향해 한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치는 것을 세번 반복하는 3배 9고두례로 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머리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나도록 청태종이 요구해 인조가 수십 번 머리를 부딪쳐 이마가 피투성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영화가 끝나가면서 50만명의 조선인이 청에 끌려갔다는 글귀가 나온다.

조선 인구가 1000만명에 불과하던 시기였다. 인조는 조선이 청나라의 신하 국가가 되겠다고 항복한 후 임금을 계속했고 최명길은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청나라로 끌려간 수많은 백성은 온갖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외면할 게 아니라 불확실성 높은 미래를 대비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1호(2017년 10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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