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억소리’ 나는 대한민국

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 2017.08.18 05:58

1990년대 초반이었다. 아파트 시세가 평균 1억원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당시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아파트값이 어떻게 1억원을 넘을 수 있나. 억소리 난다"던 탄식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지금은 어떨까. 아파트값이 3.3㎡(1평)당 1억원을 넘었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실제 2014년 1월 3.3㎡당 1억원 넘는 거래가 이뤄진 적이 있다.

청담동 마크힐스이스트윙 전용 192.86㎡ 아파트(20층)가 65억원에 거래돼 3.3㎡당 1억1122만원을 기록한 것. 같은 시기 같은 면적의 이 아파트 3층은 절반을 밑도는 28억208만원에 거래됐다. 당시 20층은 한강 뷰를 선호하는 누군가에게 특별히 고가로 거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특별한 거래가 아니어도 3.3㎡당 1억원대 아파트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시세에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재건축된다면 분양가가 3.3㎡당 6000만원을 웃돌고 입주 후에는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강남권에서 거래도 이뤄졌다. 지난달 말 계약된 개포주공 1단지 전용 35.87㎡ 아파트(1층)가 12억원, 3.3㎡당 1억36만원에 팔렸다. 전용 42.55㎡(2층)는 최고 13억원에 거래돼 3.3㎡당 9166만원을 기록했다. 아파트가격 상승을 주도한 대표적인 재건축단지인 개포주공1단지는 지난해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대지지분이 커 재건축 후 평형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실거주가 아닌 투자목적으로 고가에 거래된 것이다.

부동산전문가들은 미래가치 평가에 ‘3.3㎡ 분양가’보다 ‘대지지분당 분양가’를 따져보라고 권한다. 재개발 지구인 한남뉴타운 내 면적이 가장 넓고 사업속도가 빠른 3구역 대지지분은 3.3㎡당 1억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 분양가는 지난 1일 분양을 시작한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 서울포레스트’가 기록했다. 분양가가 3.3㎡당 평균 4750만원으로 '갤러리아 포레'가 10년 전 기록한 최고가 4535만원을 넘어섰다. 지상 49층인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전용 273㎡ 펜트하우스 분양가는 62억5410만원으로 3.3㎡당 7560만원이다. 전용면적 97㎡는 높은 분양가에도 20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고가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꾸준함을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2001년 이후 최대 분양물량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기존 아파트 매매가도 7월 마지막주 서울에서 올 들어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부산·세종시에서도 상승률이 확대됐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학군까지 대이동… 복부인의 등장


“생활비로 남편과 입씨름하던 한여사는 아파트 청약 현장을 찾아 신청한다. 그때 복부인으로 나선 방여사와 정여사를 알게 된다. 한여사는 운좋게 당첨돼 하루아침에 큰돈을 번다. 그때부터 남편을 꼼짝못하게 하고 본격적인 복부인이 된다”

영화 <복부인>의 전반부 시놉시스다. 최근 나온 영화가 아니고 37년 전인 1980년 8월15일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다. 부동산 복부인과 투기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알 수 있다.


<복부인>이 만들어진 사회적 풍토는 1970년대 마련됐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강남 1970>이란 영화도 있다. 복부인 민마담은 여름에 한강이 범람하면 물이 차는 말죽거리 일대 논밭을 싼 값에 사들인다. 여러 방법을 통해 땅값을 띄운 뒤 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방식으로 부를 쌓는다. 2015년 개봉된 이 영화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나오는 남서울개발 계획(1970년 발표)에 관한 얘기를 모티브로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암투를 그렸다.

민마담은 "영동을 명동으로 만들 수 있어. 위에서 부채질만 잘 해주면"이라고 말한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들은 강남의 땅을 싸게 사들인 뒤 값은 뛰어올랐는데 실제 개발이 더디자 경기고, 서울고, 경기여고 등 명문학교를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는 등 각종 유인책을 쏟아냈다.

이후 8학군은 교육환경만으로 살고 싶은 동네가 됐다. 정부의 부채질로 투기바람이 불어온 강남에서는 이후 15년간 땅값이 무려 2000배나 올랐다. 같은 기간 강북은 15배 오르는 데 그쳤다.

재력과 정보력은 있지만 이름이 알려져 직접 나서지 못하는 사업가와 공직자는 아내가 대신 나서 부동산을 구입했다. 일부 중산층 여성들도 공인중개업소를 돌며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사고 팔면서 ‘복부인’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다.


시세차익이 날 만한 아파트를 분양하는 곳에는 소위 ‘떴다방’으로 불리는 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가 나타났다. 아파트 분양권을 확보한 뒤 웃돈을 붙여 되팔아 아파트 청약 당첨자들과 시세차익을 나누기도 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근처에 떴다방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웃돈이 얼마큼 붙는지를 보면 청약경쟁률과 이후 아파트 매매가격도 가늠할 수 있었다.

70년대 강남권 아파트가 대량 분양되던 시기에는 1가구1주택 같은 청약 관련 제한 없이 선착순 분양이어서 복부인이 활동하기 더욱 좋은 환경이었다. 계약을 해지해도 계약금을 돌려줘 돈을 최대한 동원해 일단 여러채 청약한 뒤 당첨된 것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취소했다.

흥미로운 건 서울시가 강남개발 촉진을 위해 1972년 강북억제책을 내놓았는데 훗날 이 억제책이 강남에 적용됐다. 강남권 부동산값이 너무 오르자 과열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민간임대 대신 공공임대시장 늘어나야


국토교통부가 올 1월1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주거지역에서 가장 비싼 땅은 강남구 대치동 대치동부센트레빌 단지로 3.3㎡당 4521만원이다.

이 아파트는 121~161㎡ 대형평형으로만 이뤄졌다. 상업지역을 포함한 전국 최고의 땅값만큼은 강남역 근처가 아니라 아직까지 명동역 근처가 관광객 등 유동인구 영향으로 최고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중구 충무로1가 24-2 부지는 3.3㎡당 가격이 전년보다 10% 오른 2억5410만원에 달한다.

부동산가격이 오르내리는 사이클이 이어지면서 호황기마다 복부인은 꾸준히 등장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롭게 뜨는 부동산 투자에 남들보다 앞서 투자하는 복부인들은 재산을 더 잘 늘렸다.

수년 전 필자가 강북의 낙후된 어떤 지역에 아내와 함께 갔다가 일이 끝난 후 버스정류장 앞 공인중개업소에 잠시 들렀을 때다. 업소 사장은 그 동네 부동산 매입을 권하면서 얼마 전 강남 아줌마(복부인)들이 휩쓸듯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지금 그곳은 강북에서 가장 많이 오른 지역 중 하나다.

복부인들은 부동산전문가답게 부동산 관련 정책과 제도가 변하면 적절히 적응해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수익을 추구했다. 일례로 도심 재개발을 통해 주택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나왔을 때는 '지분쪼개기'가 등장했다. 1인 소유 등기인 다가구주택을 부수고 여러 사람 등기인 다세대주택을 신축해 주택지분 소유자 모두가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것이다.


쉴 때와 나설 때를 아는 것도 실력일지 모르겠다. 건설경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부동산시세가 조정 받는 시기나 경제가 침체됐을 때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가 나온다. 반대로 시세가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고 부동산경기가 과열되면 후유증이 염려돼 반대의 조치가 취해지곤 한다.

아파트 분양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2일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 및 재건축투자자, 대출규제 등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내년 4월 양도세 중과를 부활해 그전에 일부 주택을 팔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을 낸다면 양도세 중과 제외,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종부세 납부 의무 면제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다주택자 규제는 매입 수요를 줄이고 매물이 나오게 해 단기적으로 시장 분위기를 식히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에 의해 주택가격 안정 효과가 얻어질 수 있다.


어느 나라든지 다주택자는 주택을 사들여 실거주 수요자에게 임대로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다주택자 매입이 줄어 민간임대주택시장이 축소된다면 공적임대주택 시장이 그 이상 늘어나야 한다.

8·2 부동산 대책에는 공공임대주택 13만호, 공공지원주택 4만호 등 연간 17만가구, 5년간 총 8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역대 최대 공급물량이다. 현재 가구 수 대비 주택비율은 100%를 넘지만 경제수준 향상에 따라 높아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쾌적한 주거공간의 공급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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