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박정웅의 여행톡] 지중해 크루즈, 별것 있나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박정웅 기자2019.11.25 06:35
"올림포스신 위해 노를 저어라!"

선조의 얼 서린 동토의 땅, 우수리스크 역사여행 감동

국내 크루즈문화 개척, 롯데관광 전세선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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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정박한 롯데관광개발 전세선 코스타 세레나. /사진=박정웅 기자
지중해 올림포스 신들이 동해 먼바다로 향한다. 강원 속초에서 이탈리아 선적 코스타 세레나의 크루징이 힘찬 뱃고동을 울렸다. 특급호텔, 테마파크, 식음료장이 모인 복합리조트…. 꿈의 크루즈여행이 시작됐다. 11만4500톤급의 14층 규모, 이 거대한 크루즈는 미끄러지듯 공해상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기항지는 ‘동방의 진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다.

코스타 세레나는 국내여행 시장에 크루즈문화를 전파한 롯데관광개발의 전세선이다. 최대 승선인원은 3780명(승무원 1000명)이다. 규모는 압도적이다. 전체 길이는 290미터로 63빌딩을 눕힌 것보다 40미터가 길다. 폭은 35미터로 선상에는 수영장, 짐, 풋살장 등 스포츠코트가 들어서 있다. 지난 10월, 생애 첫 크루즈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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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서 일출을 담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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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서 본 블라디보스토크 금각만대교의 여명.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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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댄스 프로그램을 즐기는 크루즈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올림포스의 신들, 동해로 향하다

크루즈 내부는 올림포스 신들로 꾸며져 눈길을 끌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비롯해 제우스, 헤라, 아테나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도 빠지지 않았다. 크루즈 층별 명칭은 신화와 잇댄 별자리 이름을 땄다. 에이퍼스,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 에리어스, 오리온, 제미니, 아쿠아리스, 센타우르스, 페르세우스, 리브라, 타우르스, 버고, 페가수스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호화로운 초대형 크루즈여행은 처음이다. 그동안 유럽 리버 크루즈(내륙 크루즈)와 국내 슈퍼요트 크루징 경험은 다수 있긴 했다. 하지만 교통(항공), 숙식(호텔 및 식음장), 액티비티(콘서트·스파·워터슬라이드·풋살·카지노 등)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원스톱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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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홍서범, 조갑경 부부.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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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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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의 한 객실. /사진=박정웅 기자
크루즈여행은 자고나면 새로운 기항지에서 보다 편안한 여행에 나설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여행 콘텐츠인 만큼 기항지의 입국심사도 일사천리다. 롯데관광 전세선의 편한 점은 또 있다. 해외여행의 걸림돌, 울렁증 심한 영어는 잊어도 좋다는 거다. 승선한 롯데관광 임직원만 100명이 넘는다.

분위기는 유럽의 지중해 크루징 못지않다. 여행객들은 저녁이면 파티에 빠진다. 언제 챙겨왔는지 우아한 드레스와 나비넥타이, 가면 차림에 놀란다. 누가 우릴 한의 민족이라 했나. 크루즈는 흥의 도가니다. ‘줌마’들의 세끼 걱정은 잊은 지 오래다. 함께온 ‘삼식이’의 앙탈은 없다. 무료로 하루 아홉끼를 드신 분도 있다. 아쉽다. 다섯끼에서 손을 들었다. 고가임에도 마사지와 스파 프로그램은 연일 풀부킹이었다. 호캉스가 따로 없다는 거다. 인기에 힘입어 롯데관광은 내년 5월 8일과 14일 전세선을 다시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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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 솔빈강 인근에 세워진 이상설 선생 기념비(유허지)를 참배하는 크루즈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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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과 그 일대의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놀고만 먹었나. 그렇지 않았다. 자타공인 가장 넓은 팬층을 보유한 홍서범-조갑경의 문화공연을 즐겼다. 역사 공부도 했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역사특강에 눈시울을 적시는 이가 많았다. 재테크 특강에는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는 사이 첫 기항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았다. 금각만대교를 배경으로 한 여명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크루즈에서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친 여행객들은 기항지 여행에 나섰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투어와 자유관광, 우수리스크 역사투어 등인데 이중 우수리스크를 선택했다. 

◆연해주에 핀 독립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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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저택의 최재형 선생 흉상. /사진=박정웅 기자
동토의 연해주에는 독립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은 선조들의 얼이 서린 곳이 많다. 대표적인 데가 우수리스크다.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유허지, ‘연해주 조선인의 대부(大父)’ 최재형 선생 고택,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모태인 전로(러시아)한족중앙총회 결성지, 쓰라린 강제이주사의 아픔을 간직한 고려문화센터가 대표적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지나 북단의 고속도로로 빠져나오는 데만 한참이나 걸렸다. 출근길에 도심을 통과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인구 60만의 부동항 기지도시 치고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이다. ‘나홀로’ 차량이 많아 도심은 늘 정체가 빚어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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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기념관에서 상영하는 기록물을 관람하는 크루즈 여행객들. 안중근 의사와 최재형 선생을 조명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로 떨어진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고속도로.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개최를 즈음해 건설했으나 정작 완공은 정상회의 2년 뒤에 됐다. 북쪽으로 새하얀 옷을 두른 자작나무숲과 드넓은 황무지가 펼쳐졌다. 러시아식 별장인 다차도 드문드문 보였다. 

수많은 사연을 싣고 날랐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꼬리를 물었다. 차창 밖 풍광에 두서없는 생각들이 스쳤다. 중국서 이 황무지를 사들인 러시아는 수형자들을 동쪽으로 보냈다. 조정의 무능과 가난에 쫓긴 고려인들은 언 두만강을 건너왔다. 조선을 도망친 이들은 타향에서 의병이 됐고 독립운동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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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으로 쓰이는 최재형 저택 내부. 입구 오른쪽엔 최재형 선생의 상징인 페치카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고려인들은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또 러시아의 ‘동방 진출’에도 일조했다. 그럼에도 20만명이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그 틈에는 홍범도 장군도 끼어있었다. 그는 1943년 중앙아시아에서 별이 됐다. 얼어 죽고 굶어 죽었으나 고려인들은 80년 뒤 55만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일부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랬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곳은 고구려와 발해, 본래 고려인의 땅이었다.

동토의 풍광에 정신을 뺏긴지 2시간쯤 지났을까. 우수리스크가 가까워지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사가 시작된 라즈돌리노예역을 지났기 때문이다. 우수리스크 도심 방향 왼쪽에는 우수리강의 지류인 솔빈강이 흐른다. 억새와 쑥부쟁이가 뒤엉킨 강 언저리에는 이상설 선생의 기념비(유허지)가 있다. 최근 방송된 MBC 역사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이 이곳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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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했다고 알리는 현 실업학교의 현판. /사진=박정웅 기자
이상설 선생(1870~1917)은 1907년 이준, 이위종과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돼 조선독립을 호소하며 일본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후 이 선생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순국한다. 이 선생의 임종은 이동녕 선생 등이 지켰다. 이들은 선생의 유언에 따라 선생의 유해를 화장한 뒤 솔빈강에 뿌렸다. 선생은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 한시라도 독립운동에 매진하라는 뜻에서다. 때문에 자신의 육신을 뉘일 묘소는 가당치도 않았으리라. 

충북 진천에서 네덜란드까지, 그리고 국경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로 이어진 마흔여덟 독립의 혼은 거친 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 조선반도에 닿았을 것이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 기념비는 2001년 러시아 정부의 협조로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웠다. 선생이 순국한 지 80년이 지난 때였다. 

◆고려인의 대부, 최재형의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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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당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한 우수리스크의 학교 건물. /사진=박정웅 기자
우수리스크 도심에는 최재형 선생(1858~1920)이 계신다. 윤봉길 의사한테 김구 선생이 있었다면 이보다 앞선 안중근 의사에게는 최재형 선생이 계셨다. 최 선생은 ‘아령(러시아영토) 고려인 사회의 개척자’, ‘러시아 고려사회의 제일인물’,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는다. 고려인 사회에서 그는 최페치카로 통한다. 페치카처럼 따뜻하게 고려인들을 품었다는 뜻도 있다. 특히 최 선생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서 국권을 상실한 조국을 위해 투쟁하다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최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앞서 러시아에 귀화한 뒤 함경북도에서 일본군을 전멸하는 무장 독립투쟁가로 활약했다. 무장 투쟁 당시 안중근 의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실책을 범한 안 의사를 품었다. 안 의사의 의거를 물신양면으로 도왔고 의거 후 그의 가족들을 돌봤다. 이러한 사실을 일제의 밀정이 모를 리 없었다. 1920년 순국한 이유다. 우수리스크 도심에는 최재형 기념관이 있다. 최재형 선생의 흔적이 유일한 옛집(고택)을 활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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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했다고 알리는 현 실업학교의 현판.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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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사진=박정웅 기자
내년은 한-러 수교 30주년의 해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고 내년에도 뜻깊은 해가 될 것”이라면서 그 이유로 최재형 순국 100주년과 안중근 순국 110주년의 해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중근을 있게 한 독립운동가로서 최재형 선생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인을 비롯해 전세계인에게 고려인, 한민족의 긍지를 알린 인물로서 서훈(현재 건국훈장 독립장)도 조정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동안 최재형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100주년을 기념해 빛을 보지 못한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소개되면서 그나마 그의 이름 석자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소련’에 속한 연해주의 그들을 애써 외면한 현실이 뼈아팠다. 분단과 한국전쟁, 잇따른 좌우의 대립에 연해주 독립운동사는 제 빛을 드러낼 수 없었다. 크렘린이 붕괴되고 러시아와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안타까운 시간만 흘렀다. 비단 이념의 문제였을까. 친일·부일분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안타깝다. 노덕술의 훈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해외 독립운동사, 특히 ‘소련’에 속한 연해주의 것은 ‘금단’(禁斷)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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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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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 15층 루프톱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최재형 기념관과 가까운 곳에는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전로한족중앙총회 결성장소로, 현재 학교 건물로 쓰이는 곳이다. 전로한족중앙총회는 이곳 실업학교에서 개최돼 1919년 3월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최초로 임시정부를 선포한 대한국민의회로 확대·개편된 것. 다시 말해 대한민국 법통과 관련이 깊다. 또한 인근 공원에는 발해의 탑 일부로 추정되는 커다란 거북기단이 있다.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고려문화센터는 독립운동과 강제이주 등 연해주 고려인들의 삶을 응축해 놨다. <취재협조=롯데관광개발>

☞본 기사는 <머니S> 제620호(2019년 11월26일~12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박정웅 기자

자전거와 걷기여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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