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박정웅의 여행톡] 황제의 섬, 대청도를 걷다

대청도(인천)=박정웅 기자2019.11.07 06:52
'생명의 기' 불어넣는 명품길

삼각산 산행과 서풍받이 트레킹… 때 묻지 않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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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대청도 농여해변의 풀등. /사진=박정웅 기자
서해5도로 향하는 뱃길은 거칠다. 뱃길의 변수는 바람과 파도, 안개인데 특히 먼바다일수록 일기예보는 엇나갈 때가 많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속페리로 4시간가량을 달리면 서해5도의 끝섬이자 맏형 격인 백령도를 마주한다. 백령도에 닿기 전 페리는 ‘푸른 섬’ 대청도(大靑島)에 들른다. 인천서 대청도(선진포항)까진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인천시 옹진군의 대청도는 온통 산 천지다. 드넓은 논과 밭을 지닌 이웃 섬 백령도와는 다른 풍광이다. 백령도는 섬 한바퀴를 도는 자전거여행이 가능한 반면 대청도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대신 대청도는 걷기여행에 적합하다. 바다로 뻗은 대청의 모든 산줄기는 이 섬의 주산인 삼각산(343m)에서 비롯한다. 이 삼각산을 기준으로 섬의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트레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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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정자각에서 본 대청도 옥죽동마을. 해변 방향으로 옥죽동해변과 모래사막(사구, 오른쪽 끝)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생명의 기(氣) 충만한 삼각산 명품로드

선진포항 인근의 대청면사무소에서 삼각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다. 면사무소 뒤편에는 삼각산 임도와 잇댄 ‘명품로드’가 시작된다. 삼각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길을 잡으면 서풍받이다. 서풍받이는 백령도의 두무진처럼 대청도를 대표하는 절경인데 백령대청지질공원의 간판이다. 삼각산을 내려오면 대청남로의 광난두정자각이다. 이곳에서 다시 서풍받이 트레일이 이어진다.

삼각산 산행에다 서풍받이 트레킹을 더해 ‘삼서 트레일’로 불리기도 한다. 공식 명칭은 아니나 등산이나 트레킹 커뮤니티에서 쓰이곤 한다. 주의할 게 있다. 삼각산 명품로드는 ‘명품’ 이름과는 달리 꽤 험한 코스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삼각산의 ‘기’(氣) 탓인 듯 싶다. 삼각산전망대서부터 정상까지, 다시 정상에서 서풍받이 방향의 중턱까진 등산코스로 보면 된다. 반면 서풍받이 트레일은 높낮이는 있어도 걷기여행객에게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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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에서 본 광난두 서풍받이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삼각산에서 초입부터 산 기운을 받았다. 다름 아닌 땅벌의 급습이었다. 면사무소 뒤편에서 명품로드를 10여분 올랐을까. 가파른 오르막길, 예고에 없던 가을비에 몸과 마음이 늘어질 때였다. 깨끗하고 선선한 곳에 웬 날파리 떼인가 싶었다. 명품로드의 초입부터 진땀을 뺀 탓에 늘어진 팔을 휘휘 저었더니 사달이 난 것.

손사래도 손사래였지만 ‘봉침’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녀석들이 외길을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와 왼쪽 옆구리에 한방씩 얻어맞았다. 또 동행은 양다리 복사뼈 쪽에 한방씩을 쏘였다. 사이좋게 2방씩 나눠가진 셈이다. 따끔한 게 늦가을로 접어들어 독기가 잔뜩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옷섶을 파고드는 기세가 대단했다. 백팩에 몸을 숨긴 한 녀석은 삼각산 정상을 공짜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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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에서 본 소청도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황제가 머문 섬, 삼각산과 원 순제의 인연

삼각산정자각까지는 꽤 넓은 임도가 이어진다. 인근의 갈림길부터 정상까지는 비좁고 가파른 등산로가 펼쳐진다. 산행에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괜히 삼각산이라 했겠는가. 삼각산 지명은 보통 나라의 도읍지에 쓰인다. 대청도에 유배된 원나라의 황제가 태자 시절 삼각산 자락에 궁궐을 짓고 살았다는 얘기다.

인천시 자료에 따르면 사료에 고려 초기, 원나라 순제가 태자시절 대청도에 귀향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324년 원나라 명종의 태자 도우첩목아(陶于帖木兒)가 계모의 모함으로 대청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것. 태자는 이듬해 원나라에 돌아가 황제(원 순제 1320~1370년)가 됐다. 순제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그의 부인은 고려 출신의 기황후다. ‘기황후’는 2013년 MBC 드라마에서 잘 보여줬다. 당시의 궁궐의 위치는 현재 대청초등학교쯤이라고 한다. 또 산의 모양이 삼각형이거나 3개의 봉우리(1~3봉)로 이뤄져 삼각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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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곳곳에서 나뭇가지가 큰 바위를 받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민간에서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삼각산의 얘기는 또 있다. 예로부터 생명의 기가 충만한 곳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서해5도의 도서민 중 유독 대청도 주민만이 대부분 생환했다는 얘기다. 또 독사들은 살지 못하고 구렁이들만 서식한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주민들은 삼각산을 ‘명산’(命山)이라고도 부른다. 삼각산의 기운이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믿음에서다.

40여분간의 ‘짧고 굵은’ 등반, 그래서인지 삼각산 정상 조망은 좋다. 원 순제의 얘기를 품은 대청초등학교를 비롯해 동쪽으로 농여해변과 풀등, 옥죽동해변과 모래사막(사구)이 펼쳐진다. 북쪽으론 백령도와 북한의 황해도가 지척이다. 남쪽으론 대청도의 형제섬인 소청도가, 서쪽으론 대청도의 으뜸 절경인 서풍받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각산 정상에서 하산코스는 광난두정자각으로 잡았다. 면사무소 뒤편에서 시작한 명품로드는 산 정상을 거쳐 광난두정자각까지 약 5㎞ 거리다. 가을비와 땅벌의 따끔한 경고로 잰걸음은 더 빨라져 산을 넘는데 1시간30분가량 걸렸다. 느긋한 산행을 즐기려면 최소 30분 이상은 보태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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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받이 기암이 빚어낸 아찔한 협곡. /사진=박정웅 기자


◆대청도 으뜸 절경 ‘서풍받이’, 아찔한 트레킹

광난두정자각부터는 약 2㎞ 원점회귀 코스인 서풍받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코스는 광난두정자각-서풍받이-하늘전망대-조각바위-하늘전망대-마당바위-갈대원-광난두정자각이다. 짧은 둘레길이지만 섬 지형 상 높낮이가 있어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다. 군 경계지역이어서 일출과 일몰시간은 반드시 지키자.

서풍받이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는 기암절벽이다. 대청도 서쪽 끝에 있다. 깎아지른 해안절벽은 대청도 제1경으로 꼽힌다. 서풍받이의 절경을 만나기 전에 둘레길 초입에서 잠시 길을 멈추자. 광난두정자각에서 길을 조금 내려오면 왼편에 ‘해병할머니’ 묘소가 있다. 대청도로 시집온 이후 60여년 동안 대청도 해병을 아끼고 보살핀 이선비 할머니를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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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받이 조각바위와 하늘전망대. /사진=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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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받이 하늘전망대서 바라본 기름아가리. 전망대 아래는 갈대원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둘레길은 양옆 바다 조망을 선사한다. 가는 길은 오른쪽 해벽에 걸쳐져 있어 경관을 담으면서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하늘전망대 2곳은 여행 피로를 잠시 누그러뜨리면서 대청도의 기운을 잔뜩 담아가는 포인트로 꼽힌다. 물론 안전펜스 너머의 아찔한 해벽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둘레길 끝자락에는 너른 마당바위가 있다. 바위는 이름처럼 넓지만 경사가 져있다. 또한 둘레길에서 다다르는 경사면도 미끄러워 접근에 주의해야 한다. 둘레길에서 보는 경치도 좋아 굳이 마당바위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광난두정자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갈대원이 있다. 갈대의 정원인 듯하나 감흥은 별로다. 다만 하늘전망대서 바라본 기름아가리와 해넘이전망대, 독바위해변을 낮은 곳에서 가까이 한다는 장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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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여해변의 나이테바위. /사진=박정웅 기자
삼각산 명품로드와 서풍받이 둘레길을 합친 전체코스는 약 7㎞로, 대청도를 횡단한다. 앞서 밝혔듯 명품로드는 산행코스임을 유의하자. 광난두정자각에서 선진포항까지는 대청남로를 따라 걸어올 수 있는 거리다. 약 4㎞로 빠른 걸음이면 1시간쯤 걸린다. 선진포항에서 대청도를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버스노선이 있다. 광난두정자각에 정차하나 운행횟수는 드물다.

대청도에는 해변이 많다. 대표적인 게 풀등을 품은 농여해변이 있다. 천연비행장인 백령도의 사곶해변을 마주하는 곳으로 간조 시 풀등이 드넓게 펼쳐진다. 풀등은 특히 빠져나올 때 주의하자. 경치에 현혹된 나머지 물때를 무시하면 안전사고와 직결된다. 바로 옆에는 농여해변과 한쌍인 미아동해변이 있다. 두 해변의 경계는 기암인 나이테바위가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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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죽동 모래사막(사구). /사진=박정웅 기자
옥죽동해변 가까이에는 사구가 있다. 옥죽동 모래사막은 대청도를 상징하는 또 다른 여행명소다. 대청도는 예로부터 ‘옥죽동 모래 서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거센 곳이다.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돼 사구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7호(2019년 11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대청도(인천)=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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