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꼰대가 되지 말자"… 기업에 부는 '문화혁신' 바람

이한듬 기자2019.09.18 06:58

재계에 조직문화 혁신 바람이 분다. 위기로 대변되는 글로벌 경제환경을 극복하려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요기업들은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급을 타파하고 자유로운 소통문화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쳐 혁신 기반을 닦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실험이 단순한 구호나 일회성 캠페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인사관리나 성과보상 등 시스템의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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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복장 자율화. /사진제공=대한항공


◆관행 벗는 기업들

LG전자는 최근 ‘리더 없는 날’을 도입해 운영하기로 했다. 팀장, 임원 등 조직 책임자가 월 1회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로 조직의 리더에게는 재충전의 기회를, 조직원에게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환경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다.

LG전자는 지난해 9월부터는 격식에서 벗어난 자율복장을 권고하고 있으며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회의를 없애는 등 불필요한 관행에서 탈피하고 있다. LG전자 외에 다른 계열사들도 다양한 조직문화 혁신을 추진 중인데 이는 지난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LG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인재’와 ‘연구개발’(R&D)에서 찾기로 한 구 회장이 최고의 혁신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과감한 조직문화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철학에 따라 일찌감치 조직문화 혁신을 추진해왔다. 2016년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실행하고 열린 소통의 문화를 지향하면서 지속적으로 혁신하자는 의미에서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을 선언하고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 3대 전략을 시행했다. 권위주의 문화 타파, 직급체계 단순화, 직무·역할 중심 인사제도 개편, 비효율적 회의 및 보고문화 개선, 습관적·눈치성 잔업 및 주말특근 축소 등 다양한 대책도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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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회장이 구성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출퇴근 및 점심시간 유연화, 복장 자율화 등 개방적이고 유연한 제도가 잇따라 시행됐으며 최근엔 현대·기아차가 일반직 직급을 기존 직위와 연공중심의 6단계에서 역할에 따라 G1~G4 등 4단계로 축소했다. 업무 전문성을 강화해 수직적인 위계 구조를 타파하고 의사결정 속도와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직원 평가방식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고 승진연차 제도 또한 폐지된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 주도로 조직문화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원부터 꼰대가 되지 말고 희생해야 행복한 공동체가 된다”는 최 회장의 발언 이후 임원체계를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직급 중심에서 본부장·그룹장 등 직책 중심으로 전환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회사가 되려면 구성원이 행복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임직원의 ‘행복지수’를 최고경영자(CEO) 평가의 척도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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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개선도 필요

4대그룹 외에도 다양한 기업이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창의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경영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사람인이 기업 597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은 혁신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분위기’(34.8%)를 꼽았다.

‘혁신을 위해 기업문화나 인사관리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84.1%가 ‘변화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워라밸 중시 등 구성원 의식이 변해서’(41.2%, 복수응답)를 1위로 꼽았다. 개인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가를 즐기는 밀레니얼세대들이 기업에 많이 진출하면서 이런 경향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조직문화 혁신이 성과를 거두려면 시스템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박준 대한상공회의소 기업문화팀장은 “조직문화를 혁신하려면 임시방편이나 현상대응만으로는 안된다”며 “연공서열과 상대평가에 의존한 비합리적인 성과관리 체계를 직무능력과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해 확실한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한다”고 조언했다. 외형적으로는 수평적인 문화를 도입하면서 성과체계나 인사관리는 연차나 서열에 기반을 둔 과거의 시스템으로 운영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박 팀장은 기업의 조직문화 혁신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호감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기업호감도를 조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기여도지만 기업윤리나 기업문화도 중요하다”며 “그러나 기업문화 부분은 거의 변함없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기업에 바라는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어 기업도 이를 충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낡고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개선해 국민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기업에 대한 호감도 또한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0호(2019년 9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한듬 기자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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